"1226년 겨울, 얼어붙은 황하 위에서 사라진 30만 대군 | 칭기즈 칸 최후의 복수와 서하 제국의 종말"
Автор: 박PD의 잔잔한 세계사
Загружено: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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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년 겨울, 칭기즈 칸은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서하를 정복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몰고 출병했습니다. 이것이 66세 노장의 마지막 전쟁이 될 것입니다.
서하는 1226년 칭기즈 칸의 서정(西征) 참가를 거부하여 끝내 칭기즈 칸의 분노를 샀고 다시 몽골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서하가 호라즘 원정에 병력을 보내기를 거부한 것, 그것이 배신이었습니다.
몽골군은 겨울에 꽝꽝 얼어붙은 황하를 넘어 수도 싱칭(현재의 인촨) 이남 지역을 포위했습니다. 서하 군대는 황하 기슭에서 몽골군을 요격했지만, 서하군은 30만 이상이었음에도 패배, 궤멸당했습니다.
1227년 8월 18일 칭기즈 칸은 서하 원정 중 육반산에서 사망했습니다. 칭기즈 칸은 죽기 직전에 서하인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는 서하의 저항이 끈질겨 칭기즈 칸을 분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은 원사, 집사, 몽골비사,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칭기즈 칸의 마지막 원정과 서하 제국의 비극적 종말을 재구성했습니다.
⏱️ 타임라인
00:00 - 인트로: "30만이 사라진 겨울"
02:31 - 역사적 배경: 서하와 몽골의 관계
1038년 이원호가 건국한 중국 북서부에 위치했던 탕구트족의 왕조
중국의 서북 지역을 정복하여 지배층이 탕구트족이고, 피지배층이 한족인 서하국을 건국했다
서하는 탕구트 유목민들이 간쑤성, 알라샨, 오르도스에 세운 나라이다
05:42 - 배신의 시작: 1217-1218년 거부 사건
1217년 - 1218년 겨울, 몽골은 서하에 추가 병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서하는 응하지 않았다
11:39 - Chapter 1: 격문 - 사막의 늑대, 강을 건너다
1226년 초, 칭기즈 칸의 선전포고
1226년 초 몽골군은 서하를 침공하면서 서하의 변경을 공략했다
황하를 향한 진군
19:15 - Chapter 2: 황하 전투(上) - 빙판 위의 전술
서하 군대는 황하 기슭에서 몽골군을 요격했지만, 서하군은 30만 이상이었음에도 패배, 궤멸당했다
만구다이 전술: 몽골 경기병들이 적진에 들어가 허세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한 척 하다가 갑자기 패한 척하며 줄행랑을 친다
몽골군은 중군(바라군 가르)과 좌익(제운 가르), 우익(콜 가르)으로 포진했고, 중군이 적과 교전하는 사이 좌•우익이 소규모 부대로 갈라져 적을 포위했다
24:43 - Chapter 3: 황하 전투(下) - 깨어진 얼음과 수장
얼음 위의 전투
서하군의 궤멸
32:24 - Chapter 4: 유언 - 옥좌를 지키는 시신
서하 원정 도중 아르보카에서 낙마 사고를 당했으며, 이후 중병에 걸려 앓아누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고를 당했을 당시의 칭기즈 칸은 이미 60세가 넘은 고령이었기 때문에 낙마는 굉장히 치명적이었을 겁니다
66세의 나이의 서하 부근의 영주 육반산의 군영에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1227년 8월 18일에 죽었다
칭기즈 칸의 시신이 비밀에 부쳐진 이야기
39:45 - 에필로그: 지워진 제국
중국 국영 CCTV의 보도에 따르면, 몽골군은 서하인을 매우 철저하게 살육해서 멸족시켰기 때문에 현재는 서하인의 후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서하는 서하문자로 논어, 맹자, 손자병법 등의 서적이나 불경을 서하어로 번역하였고, 독자적 문명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비운의 나라다.
📚 참고문헌
📖 1차 사료
《元史》(원사) - 明 宋濂 등 편찬 (1370년)
원나라의 정사(正史), 칭기즈 칸의 서하 정벌과 사망 기록
칭기즈 칸이 1227년 8월 18일부터 25일이 지나는 사이에 열이 나고 질병이 발생했고, 이 질병에 걸린 후 8일 만에 사망했다고 기록
《集史》(집사, Jami' al-tawarikh) - 라시드 앗딘 저 (1307-1316년)
페르시아어로 쓰인 몽골 제국의 역사서
칭기즈 칸은 향한 곳은 남송과의 국경, 즉 쓰촨(四川) 방면이었다고 한다
《蒙古秘史》(몽골비사,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 1240년경
몽골 24사 중의 하나인 원사(元史, History of Yuan)에서는 칭기즈 칸이 1227년 8월 18일부터 25일이 지나는 사이에 열이 나고 질병이 발생했고, 이 질병에 걸린 후 8일 만에 사망했다고 기록
📖 2차 연구서
René Grousset, 《The Empire of the Steppes: A History of Central Asia》 (1939)
유라시아 유목 제국의 역사적 맥락
Jack Weatherford, 《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2004)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칭기즈 칸
Timothy May, 《The Mongol Art of War》 (2007)
만구다이 전술과 몽골군의 전투 방식 상세 분석
Thomas J. Craughwell, 《The Rise and Fall of the Second Largest Empire in History》 (2010)
모리스 로사비, 《쿠빌라이 칸: 그의 생애와 시대》 (한국어판 2012)
📖 중국 사서
《蒙鞑備錄》(몽달비록) - 趙珙 저 (南宋)
남송인이 기록한 몽골군의 전술과 풍습
《黑鞑事略》(흑달사략) - 彭大雅, 徐霆 저
몽골의 군사 제도와 전투 방식
📖 서하 관련 연구
Ruth W. Dunnell, 《The Great State of White and High: Buddhism and State Formation in Eleventh-Century Xia》 (1996)
서하 국가 형성과 불교의 역할
吳天墀, 《西夏史稿》 (1983)
중국 학계의 서하사 연구
📖 몽골 군사 전술 연구
《Historia Mongalorum》(몽골여행기) - Giovanni da Pian del Carpine (1247)
교황 특사로 몽골을 방문한 기록
《東方見聞錄》(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 (1298)
서하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를 사용했는데, 탕구트어라고도 부르는 서하어는 중국티베트어족의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며, 1036년에 공포된 서하문자는 한자와 마찬가지로 1자가 1음절 곧 1낱말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였다.
200년의 역사를 가진 찬란한 문명국가가 단 하루 만에 역사에서 지워졌습니다.
이 영상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사라진 목소리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였습니다. 몽골군은 서하인을 매우 철저하게 살육해서 멸족시켰기 때문에 현재는 서하인의 후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 앞에서, 저는 역사가로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 기록 사이의 공백에는 인간의 감정과 선택, 그리고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만구다이는 몽골어로 '붉은 전사'라는 뜻이며, 이들의 전술은 유럽 군대가 이 매복과 유인전술에 무수히 당했던 것은, 말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이 상상도 못했던 기술이었던 데다가 망구다이의 기동력과 위장술도 무척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칭기즈 칸의 마지막 전쟁을 통해 '배신', '복수', '소멸'이라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탐구합니다. 전쟁은 단순히 승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며, 한 민족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는 과정입니다.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닙니다.
1226년 겨울, 얼어붙은 황하 전투
1227년 8월 18일, 칸의 사망
서하의 완전한 말살
모두 역사적 사실입니다.
다만 사료가 기록하지 못한 '감정의 공백'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웠습니다.
서하 장군 위명령(가명)의 절망, 서하 병사들의 공포, 칸의 마지막 유언 장면의 대화들은 역사적 개연성 안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칭기즈 칸의 사인에 대해서는 전염병이다, 화살에 맞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 벼락 맞아 죽었다,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복상사했다, 분명히 자연사다 등 여러 얘기들이 전해질 정도로 수많은 설들이 많은 편이기에, 저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낙마 후유증설을 채택했습니다.
황하 전투의 구체적 묘사는 만구다이 전술과 몽골군의 삼익(三翼) 전술에 대한 사료 기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빙판 위의 전투, 투석기 사용, 화공 등은 몽골군이 다른 전장에서 실제로 사용한 전술들을 서하 전역에 적용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가장 고심한 부분은 '30만 서하군'의 수였습니다. 서하군은 30만 이상이었음에도 패배, 궤멸당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중세 전쟁사에서 병력 수는 종종 과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하가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을 고려하고, 몽골군의 압도적 승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 수치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작가인 저는 이 대본을 쓰면서 끊임없이 자문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지워진 민족의 마지막 목소리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이것이 이 영상의 목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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