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세대가 본 생명사상의 의의와 한계 / 김지하 1주기 추모학술포럼 2회 / koreanhistoryyoun
Автор: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Загружено: 7 мая 2023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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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사상가적 위상과 의미-생애와 작품을 중심으로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사마르칸드 국립대학교 교수. 역사학)
**생명, 밥, 우주생명학, 천부경, 기연 묘연, 화엄, 상호호혜, 신시경제, 홍익인간, 여인, 수왕, 모심, 살림, 시김 등 등이다. 그리고 ‘그늘’이다. 양지도 아닌 음지도 아닌, 어둠도 아닌 광명도 아닌, 그늘.
1. 들어가는 글
김지하는 누구인가?
그는 시인이고, 민주화 투사였고, 문화운동가로 알려졌다. 신앙과 종교현상의 연구에 천착하였고, 자기이론과 자기사상을 펼친 사상가였고, 심지어는 생태운동 등에 참여한 실천가였다. 때문에 연구자들이나 또는 자기이론 및 행위와 연관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민주화’, ‘문학’ 등의 예술, 동학 등의 종교사상 등과 연결시킨 주장들을 했다.
그리고 또 예술이나 특정 종교의 종사자, 그와 연관된 학자들이 사상 또는 사상가라는 용어를 부여한 적은 있다. ‘사상’ 이라는 단어 또는 용어를 일상적인 회화의 수준으로 차용해 말한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전문학자들이 그의 말과 작품들, 실천행위들을 사상과 연관된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이론틀을 적용하여 논리적인 분석하고, 검증 평가하면서 구체적으로 전개한 논문들은 희소했다. 물론 분야에서 그를 사상가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 "김지하 사상 기행"이라는 제목의 책이 1980년 대 중반에 "1"이, 이어 1999년도에 "2"가 나왔다. 또 김지하 자신도 본문에서 살펴보겠지만 여러 곳에서 자주 사상이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2005년에 펴낸 "생명과 평화의 길"에서 사상가의 면모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그를 객관적으로 그의 사상 내용과 사상가로서의 자격, 역할 등을 구체적으로 다룬 글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김지하 사상’이라고 유형화시킬만 한 것이 있고, 그를 ‘사상가’라고 평가할 만 하다.
이러한 학술포럼을 기획하고, 논문을 발표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인간들이 ‘언어’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세상에 그런 부류의 기준, 그럼 범주 내에서 그를 사상가라고 부른다면, 더더욱 한국 지성계의 메카니즘을 고려한다면 그는 곧 잊혀질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그를 진정한 의미의 사상가로서 평가하고, 그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사회발전에 활용시키려 한다면 그의 사상에 대한 개념을 알고, 정의를 분명히 해야한다. 그러려면 그를 사상가로서 해석하고 유형화시킬 수 있는 이론적인 ‘틀’이 필요하다.
그가 돌아간 지금이라도 나는 이렇게 스스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김지하는 사상가인가?’
‘김지하의 사상은 무엇인가?’
더불어 ‘김지하의 존재와 사상은 이 시대에, 이 문명에, 더 나아가 다음 세대인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선 첫째로, 그를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거나 왜곡시킨다. 그의 살아 생전에도 이러한 일은 참 많았다. 때문에 그는 정말이지 여러 종류의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그에게 그러한 피해를 주고, 그와 결별했거나 소원한 사람들이 그를 왜곡하고 농락했다. 더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함부로 말하는 인간들도 있고, 김지하의 특정 발언이나 행위, 선택을 ‘섬망(일종의 정신질환)’ 중에 것으로 단정짓고, 그를 ‘위악자(僞惡者)’라는 되지않은 굴레를 씌운다. 끝까지 그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 같다. 김지하의 성격을 볼 때 그가 질색하는 사람은 위선자들이다. 김지하는 과대평가되거나 우상화될 필요가 없다. 동시에 이용 또는 악용 당해서도 안된다.
김지하는 누구나 알지만 ‘好 不好’가 지나칠 정도로 분명하다. 그가 누구들을 싫어했는지, 또 누구들이 그와 형수를 괴롭혔는지 나는 안다. 그래서 능력껏 내가 알고, 구체적으로 체험한 김지하를 일부라도 알려주면서 일반인들의 통념을 교정시키고, 일부의 오해들을 풀어주고 싶다. 또 그의 가치를 평가하고, 드러내고 싶다. 이러한 일은 인간된 도리이기도 하다.
또 하나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해 아쉬움, 유감, 분노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분야별로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김지하와 연관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에게서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기 논리, 학문, 행위(예술, 신앙)의 근거로 삼거나 차용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김지하의 일부를 갖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선택적인 기준을 갖고 평가했다. 특히 1980년 전반, 1990년대 초반, 2010년대 초반 등이다.
문명, 국가, 민족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시대적인 존재이다. 공간이 있고, 활동한 시대가 있다. 따라서 한 개체의 일생이 항상 균질적이고 동일할 수는 없다. 김지하처럼 자기 실존이 강하고, 시대의식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시대 상황에 따라서 자기갱신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각각 다른 형태와 의미로 전달됐을 것이다.
본문에서 일부의 예를 들겠지만, 그를 평가하는 기준은 20대 또는 30대의 강한 민주화투쟁의 모습을 전형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의 1990년부터의 삶, 그리고 2000년대 이후의 삶과 행위 작품을 비롯해서 오늘 주제인 사상가로서의 평가는 절대 많은 편이 아니다.
2) 김지하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또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위해서 김지하의 사상은 필요성이 크다.
역사학자로서 때때로 자문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왜 우리는 사상가가 별로 없을까?’
‘왜 현대에는 사상가라고 불러주고 싶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을까?’
‘혹시 내가 모르는 이가 있다면 그는 누가일까?’
물론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상가’라는 것은 희소가치가 절대적인 대단한 존재는 아니다. 수준의 차이, 역할의 차이 등이 있지만. 성숙하고 바람직한 사회에는 기본적으로는 지적이고, 정적이고, 또 진리를 실천하는 사상가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사실 한국의 전역사를 사실에 근거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이상적인 생태환경 속에서 외침에 시달리지 않고 온화한 생활을 누려온 과정이다. 다만 조선의 멸망, 긴 일본의 식민지,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대전쟁, 그리고 처참한 가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도 기적처럼 단기간에 극복해서 외견상으로는 성공한 나라이다. 그리고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동한 결과이지만 사회의 갈등과 상호미움, 정치동물화 현상으로 가득찼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말년, 혹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관된 삶을 살았다. 진실을 찾으려 했고,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무엇보다도 소명감이 강했다. 지금 한국인에게는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고, 실현시키는 실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지하의 사상문학, 사회적인 삶은 다음 시대의 모델로서 필요하다.
또 하나가 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김지하의 사상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고, 나도 심각한 어조로 우려했고, 김지하도 미래문명에 대하여 엄청난 관심을 갖고 그을 발표해왔다. 세계는 자체의 붕괴현상도 있지만 인류문명의 한계, 국제질서의 충돌 등 온갖 문제점들로 가득찼다. 모든 지구인에게는 문명사적(패러다임의 변화), 지구사적 (생태계), 세계사적(globalization) 문제들이 있다. 우리가 있는 동아시아도 동아시아적인(동아시아 공동체 및 중화 패권주의) 변동과 재생의 와중에 내동댕이쳐진 상태이다. 이렇게 세계는 빠른 속도로 생명을 상실해가는 중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에서든 ‘신사상’ ‘신문명론’이 필요하고, 그 사상과 문명은 모든 존재들의 절박한 생명을 유지하고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어야하는 것이어야 함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개체와 집단은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자기위치를 설정하고, 진행방향을 찾아야 한다. ‘존재와 인식 사이의 불일치’ 즉 보다 완결된 상태를 지향하는 존재물의 본성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점들을 극복할 다양한 것(?) 들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사상이다. 역사학자이고, 사상사 연구자인 나는 신문명, 신사상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역사학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로 몇몇 대안 이론들을 제기해 왔다. 예를 들면 ‘동아지중해모델’, ‘웅달샘론’, ‘flow’, ‘터이론’ , ‘생명사관’ ‘non civilization’ 등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 그가 떠난 지 얼만 안된 지금 이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적합한 ‘사상’은 필요하고, 이를 이끌어갈 사상가는 더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한국에는 과거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현대에는 사상가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희소한 것 같다.
난 언젠가부터 사상가로서의 가능성이 풍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논리들을 제시한 김지하를 주목했었다. 실제로 나는 때때로, 그의 기분을 살펴가며 말했었다. ‘선배님은 ‘사상가’라는 이름으로 많이 활동하셔야 합니다.“ 그가 진정한 사상가로서 국 내외. 그리고 후대에서도 이 시대의 의미있었던 사상가로서 평가받고 역사상에서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해서이다.
3) 왜 그가 사상가로서 이 시대에 필요한 존재인가를 역사학자인 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제시하고 싶다. 우선 첫 단계로 그가 사상가로서 평가받을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주관적이 아닌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자의적이거나 책임감이 부족한, 개념정의가 불확실한 말이나 행위로 ‘틀(frame)’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감성적으로 사고하고, 정제가 덜 된 선언적인 용어와 선동적인 개념을 갖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다른 사상 및 사상가들과 상호 비교해야 한다.
둘째 단계로는 그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사상은 시·소설·음악·미술·조각·신앙 등과 같은 것이 아니다. 학문에는 각각 분야의 역할이 있듯이 사상은 자격과 역할이 있다. 즉 학문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사상’으로 기본 자격을 갖추거나 다른 사상들과 비교하여 평가받을 정도의 형식을 갖고, 깊이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김지하가 표방한, 또는 설정한, 또는 정립(?) 한 사상의 핵심과 본질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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