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上-1) 「孟子(맹자)」 제2公孫丑(공손추上)편1장(2)
Автор: 경연학당:이윤숙(家苑)TV
Загружено: 9 апр. 2023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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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若是則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시되 猶未洽於天下어시늘 武王周公이 繼之然後에 大行하니 今言王若易然하시니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曰文王은 何可當也시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히 賢聖之君이 六七이 作하여 天下歸殷이 久矣니 久則難變也라 武丁이 朝諸侯有天下호대 猶運之掌也하시니 紂之去武丁이 未久也라 其故家遺俗과 流風善政이 猶有存者하며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이 皆賢人也라 相與輔相之故로 久而後에 失之也하니 尺地도 莫非其有也며 一民도 莫非其臣也어늘 然而文王이 猶方百里起하시니 是以難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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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伯昌(文王은 추존시호)은 97세에 崩하셨으니, 공손추가 百年이라고 한 것은 成數(10×10)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서백창은 殷나라 당시 제후들의 3분의 2를 호응을 받고도 은나라와 대적하지 아니했고, 아들인 무왕에 이르러서야 은나라를 이기고 周나라의 천자가 되었으나 3년 만에 돌아가시고, 어린 성왕이 등극하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이 조카를 도와 주나라의 禮樂을 정비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공손추는, 儒家에서 성인으로 존숭하는 문왕 또한 오랜 동안 덕치를 펼쳤지만 은나라의 모든 이를 歸順시키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그 아들인 문왕과 손주인 成王에 이르러서야 왕도정치가 꽃피었는데 어찌 왕 하기가 쉽겠느냐는 물음이다.
맹자는 이에 대해 문왕 혼자 감당하기에는 은나라가 결코 만만치 않은 나라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은나라의 처음 이름인 商나라는 湯임금이 夏나라 말기의 폭군인 桀을 치고 세운 나라로, 어진 정치를 펼쳐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복속시켰다. 이후 紂(30대)에 이르러 망할 때까지 太甲(4대) 太戊(9대) 祖乙(13대) 盤庚(19대, 殷 땅으로 遷都) 武丁(22대, 高宗) 등의 성군들이 나왔기에 오래도록 은나라의 정치체제는 안정적이었다. 따라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美風良俗이 누대로 전해지는데다가 덕망 높은 世臣들이 있기에 은나라는 결코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은나라가 비록 폭군 걸의 시대를 맞이해 나라의 정치는 급격히 문란해졌으나 微子 微仲(微子 啓의 아우인 衍) 王子比干 箕子 膠鬲(告子하편 제15장에 따르면 어물전에서 일하다가 문왕에 의해 천거된 인물로 알려짐) 등의 현인이 있었기에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문왕이 천하의 3분의 2를 지지를 받고도 쉽게 은나라를 치러 갈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은나라의 멸망을 내다보고 종묘사직을 지키고자 조상의 위패를 갖고 도망간 미자, 간언하다가 죽임을 당한 비간, 거짓 미친 체를 하며 끝까지 남아 은나라의 멸망을 지켜보았던 기자, 더욱이 기자는 ‘홍범(洪範)’(『書經』 周書)이라는 오행 대법의 이치를 무왕에 게 전해주어 주나라의 문화를 꽃피우게 하는데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준 인물이다. 공자가 이들 세 사람을 은나라 말기의 三仁으로 일컬을(『논어』 미자편 제1장) 정도였으니, 은나라는 쉽게 와해될 사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은나라에서 서백창이 백 리의 땅으로 제후를 하고 있었으니 쉽게 왕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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滋甚만 하다가 언제 ‘툭탁’하고 터지는 소리가 날까?
제나라에서 왕 하기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쉽다는 맹자의 말의 말에 공손추는 의혹만 더욱 불거졌다. 의혹이 불거졌다는 것을 공손추는 ‘滋甚’이라고 표현했다. ‘불어남이 심하다, 심히 불어나다.’는 뜻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계속 불어나게 되면 ‘툭~탁~’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기 마련이다. 이 ‘滋甚’과 관련해 재미있는 내용이 전해진다.
예로부터 『맹자』는 역사뿐만 아니라 깊은 철학적 내용까지 두루 담겨 있어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으로 알려졌다. 막힘없이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맹자의 논리를 이해하려면 천 번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곧 웬만큼 공부하지 않고는 문리(文理)가 터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맹자』를 千讀하면 文理가 터지며 ‘툭탁’ 소리가 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한 제자가 千讀을 했음에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자 선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孟子千讀에 未聞‘툭탁’之聲하니 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
선생이 답장을 보냈다.
“此 툭탁之聲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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