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찰턴 상사: 한국전쟁에서의 영웅적 희생과 인종 차별 극복
Автор: 신사방TV
Загружено: 21 июн. 2024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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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한국전쟁에서 뛰어난 용맹과 자기희생으로 명예훈장을 수여받은 하이루드 키스 찰턴 상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초기 생애와 군 입대
찰턴 상사는 1925년 11월 30일 알라바마주 오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46년 11월에 군에 입대했으며, 당시 미국 군대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기였습니다. 찰턴 상사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군에 복무했습니다.
한국전쟁과 영웅적 행동
1951년 6월 2일, 찰턴 상사는 제1대대 C중대 소속으로 치포리 마을 인근의 543고지를 점령하는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제3소대 소대장이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찰턴 상사는 소대의 지휘를 맡아 재정비하고 다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대를 이끌고 세 번이나 고지로 돌격하며 강력한 중국군의 박격포와 보병의 공격에 맞섰습니다. 찰턴 상사는 혼자서 두 개의 중국군 진지를 파괴하고 소총과 수류탄으로 여섯 명의 적을 사살했습니다. 가슴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소대를 계속 이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찰턴 상사는 "가자"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혼자 고지 정상으로 돌격하여 중국군 박격포 진지를 공격했습니다. 적의 수류탄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싸워 진지를 파괴했습니다. 그의 용감한 행동은 많은 전우의 생명을 구하고, 그의 희생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논란과 재안장
찰턴 상사는 1951년에 사후 명예훈장을 수여받았지만, 아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을 거부당했습니다. 이는 "행정 오류"로 알려졌지만, 찰턴 상사의 가족은 인종차별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1989년, 군은 다시 찰턴을 아링턴에 안장하려 했지만, 가족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베클리의 아메리칸 레전 포스트 32의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2008년 11월 12일, 다른 명예훈장 수여자들의 노력 덕분에 찰턴 상사의 유해는 마침내 아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찰턴 상사의 이야기는 용기와 헌신, 그리고 인종차별을 극복한 강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용감한 행동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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