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서양 사상의 '도약의 지점'

기원전 387년 무렵 그리스에서는 플라톤이 아테네 변두리에 학교를 세웠다. 학교가 위치한 언덕이 영웅 아카데모스에게 바쳐졌던 까닭에 학교의 이름도 ‘아카데미’라 불려졌다. 그 후 여기서는 약 900년 이상 수업이 이루어졌다. 플라톤의 아카데미는 중세의 유럽 곳곳에서 설립되기 시작한 대학의 전형이 되었다.
서양 사상의 요람인 이 학교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학생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기원전 367년 열일곱의 나이에 트라키아의 작은 시골 마을 스타게이라에서 아테네로 진출했다.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던 아버지가 델포이 신탁소에서 출중한 아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라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 플라톤은 벌써 20년 동안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을 더 아카데미에 재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플라톤과 철학을 논하는 가까운 동료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주변인이었다. 우물거리듯이 말을 하고, 온종일 책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을 때가 많아 플라톤이 그를 가리켜 ‘책 읽는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제자들이 금욕 생활로 넘어가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안락한 삶을 중시했다. 그에게는 좋은 옷과 말끔한 머리, 멋진 반지도 삶의 중요한 요소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저술을 통해 플라톤 사상을 심화하고 분류하고 세분화했다. 하지만 스승이 살아 있을 때부터 벌써 두 사람 사이에 철학적 마찰이 빚어졌다. 플라톤이 한숨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 망아지가 어미 말을 차듯 나를 걷어찼어.”
그럼에도 스승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경심만큼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플라톤이 훌륭한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사악한 사람들이여, 유일무이한 존재인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라. 그대들은 그를 칭송할 자격조차 없도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플라톤은 세계와 사물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이념의 표현으로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자체에 내재한 본질과 이념을 찾았던 것이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347년,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스페우시포스가 스승의 후계자로 지명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학파와 완전히 결별하였다. 깊은 상처를 안고 아테네를 떠나 소아시아의 아타르네오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헤르미아스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르미아스의 질녀 혹은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피티아스와 결혼했다.
기원전 34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 플리포스 2세의 궁정으로 갔다. 이곳에서 세계사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관계가 태동했다. 훗날 세계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열세 살 왕세자의 교육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기원전 334년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학교를 세웠다. 학교의 이름인 ‘리케이온’은 나중에 ‘문화회관’이나 ‘강당’을 뜻하는 영어 라이시엄으로 변형되었다. 그런데 학교 건물이 없었던 탓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건물의 주랑에서 제자들을 만나 이리저리 거닐면서 토론을 하고 학문을 가르쳤다. 그래서 아테네 사람들은 곧 이들을 ‘배회하는 자들’이라고 불렀고, 철학사에는 ‘소요학파’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랑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처럼 그의 사유도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모든 주제를 두루 거닐었다. 철학, 자연과학, 윤리학, 정치학, 국가학 할 것 없이 삶의 거의 모든 문제에 그의 정신적 손길이 미쳤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내용과 분량 면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학교를 세우고 나서 12년 동안은 개인적인 저술 활동을 자제하고 주로 제자들과의 공동 저술에 치중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왕성한 저술 작업은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전 사유를 총체적으로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내용과 형식 면에서 완벽하게 체계화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오늘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철학의 수많은 기본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나아가 그는 논리학을 정립했고, 형이상학을 하나의 철학 분과로 확립했다. 존재와 존재의 원인, 본질을 다루는 이 새로운 철학 분과는 총 열네 권으로 상세하게 서술되었는데, 훗날 새로 나온 전집에서 자연학 뒤에 배치되었다고 해서 메타피직, 즉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하지만 형이상학은 실제로도 자연의 인식 대상들을 뛰어넘는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는 문학 연구에도 정열을 쏟았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것은 비극과 서사시에 관한 한 권의 저서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들과 함께 동물계에 관한 자료도 힘닿는 데까지 수집했고,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동물마다 어떤 특성이 있고, 어떤 식으로 번식을 하고, 어떤 질병에 걸리는지 분석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오류를 범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고새는 사람이 내뱉는 공기에 의해 새끼를 배고, 쥐는 소금을 핥아 먹음으로써 새끼를 가진다.
‘도약의 지점’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도 이런 식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0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동물학 저서 ‘동물의 역사’에서 알의 흰자 속에 장차 태어날 새의 심장이 ‘하나의 핏자국’으로 나타나 있다고 기술했다. “이것이 생물의 펄쩍 뛰어오르는 지점이다.”
15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일원 테오도루스 가자는 이 문장을 라틴어로 ‘동물을 움직이고 뛰게 하는 지점’으로 번역했고, 이것이 다시 ‘도약의 지점’으로 축약되었다. 이런 유래와 맥락에서 오늘날 본질적인 것이나 어떤 문제의 핵심을 말하고자 할 때 이 말을 쓰는 이유가 설명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저서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그 내용의 풍부함과 다채로움으로 플라톤의 저서까지만 해도 아직 유지되었던 학문의 단일성이 해체되었다. 이제 학문은 물리학과 정치학, 윤리학, 논리학, 동물학 등 이론과 실제의 개별 분과로 나누어졌다. 중세 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17세기 말까지 서양 사상은 본질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독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고 나서도 300년 뒤에야 탄생했다. 그러나 신을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정신’으로 파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은 중세의 기독교 철학인 스콜라 학파가 받아들이기에 충분했을 뿐 아니라 마땅한 다른 문헌들이 없었던 까닭에 풍부한 지식을 담은 그의 저서, 특히 자연과학 저서들은 스콜라 학파의 중요한 교과서가 되었다. 이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기독교적 서양 사상의 ‘도약의 지점’, 특히 핵이 되었다.
#지성의숲 채널 운영자(성필원)는 무계획적인 사상가를 뜻하는 'kabbu'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스스로를 학문과 성공의 지혜를 결합시킨 최초의 세속 철학자로 칭한다.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다른 의미있는 삶의 철학을 추구하면서 그 결과물을 글과 강연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양처럼 살 것인가 늑대처럼 살 것인가』와『생존』, 『정보브로커』,『인간농장』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내 안의 백만장자』와 『행동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직접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20만명 ‘힘이되는 좋은글’ 같은 다양한 사이트들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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