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최초 건국훈장, 조선을 사랑한 '호머 헐버트'
Автор: 그린비트
Загружено: 16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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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트 #역사공부
“나는 웨스트민스터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 호머 헐버트 박사의 위대한 사랑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을 받은 호머 헐버트 박사는 조선을 누구보다 사랑한 외국인이었습니다.
1886년, 조선 정부의 요청에 따라 영어 교사로 육영공원에 부임하며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는,
단순한 선교사나 교육자의 틀을 넘어 조선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독립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한국어를 3년 만에 유창하게 익힌 그는 1889년 한글로 한국 최초의 세계 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펴냈고,
1896년에는 ‘아리랑’을 악보로 최초 기록하여 세계에 한국의 민요를 알렸습니다.
주시경과 함께 한글 띄어쓰기, 마침표 등의 문장부호를 정착시켰으며,
독립신문 창간에도 참여해 순한글 신문 시대를 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국권이 위태로워지자 헐버트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밀서를 전달하려 했고,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파견의 실무를 맡아 ‘제4의 특사’라 불렸습니다.
그는 조선의 외교관이 아닌 선교사였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한 외교 전선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그의 한국 사랑은 생애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1949년, 광복된 조선의 초청으로 고령의 몸을 이끌고 한국에 오르며 그는 언론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방한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고종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숨겨놓았던 상하이 독일은행의 내탕금을 찾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일제가 가짜 서류로 자금을 탈취한 후였고, 헐버트는 끝내 그 돈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입국 일주일 만에 폐렴으로 별세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장으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름조차 새기지 못했던 그의 묘비는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로 ‘헐버트 박사의 묘’라 새겨졌습니다.
그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 진정한 조선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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