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걷다, 열세 번째 이야기. 오늘은 남태평양에 떠 있는 섬나라 피지, 그중에서도 마마누카 제도라는 작은 섬들을 함께 걸어보려고 합니다.

지구를 걷다, 열세 번째 이야기. 오늘은 남태평양에 떠 있는 섬나라 피지, 그중에서도 마마누카 제도라는 작은 섬들을 함께 걸어보려고 합니다. 바다 위에 흩뿌려진 작은 낙원들 사이를 천천히 건너다니는 여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가 아니라, 뜨겁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먼저 다가옵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난디라는 마을을 지나 항구로 향하는 동안, 창밖 풍경은 초록과 파랑이 번갈아 가며 지나갑니다. 도로 옆으로는 야자나무와 초록빛 들판이 보이고, 그 뒤로는 남태평양 특유의 깊은 파란 바다가 멀리서 반짝입니다. 이쯤 되면 괜히 마음속 시계도 함께 느려지는 느낌이 듭니다.
포트 데나라우 항구에 도착해 배에 오르면, 본격적으로 바다 위에서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짙은 파란 바다색이 보이지만, 조금만 섬 쪽으로 나가면 바다 색깔이 금세 달라집니다. 초록빛이 돌다가, 어느 순간에는 청록색으로 변하고, 또 어떤 구간에서는 물감을 섞어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옅은 파란색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옵니다. 배가 속도를 줄이며 작은 섬들 사이로 들어가면, 손으로 그려 놓은 듯 곧게 뻗은 야자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흰 모래 해변이 보이고, 그 뒤로는 조용히 누운 리조트 건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섬에 내리는 순간, ‘불편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마마누카 제도에 첫 발을 딛는 순간, 숨 쉬는 속도부터 달라집니다. 해야 할 일, 밀린 일정,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일들은 잠시 뒤로 물러나고, 오늘 이 섬에서 무엇을 하고 싶을지,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를 천천히 고를 수 있는 여유만 남습니다. 발바닥 아래로는 부드런 모래가 감기고, 햇살은 살짝 뜨겁지만 기분 좋게 어깨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불라” 하고 밝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피지 사람들의 대표 인사말입니다. 미소를 가득 머금고 손을 흔들어 주는 그 인사 한마디가 이 여행의 분위기를 한 번에 정리해 줍니다. 이곳은 볼거리와 체크리스트를 채우는 여행지가 아니라, 멈추는 법을 다시 배우는 곳이라는 사실을요.
피지는 나라 이름입니다. 정식 이름은 피지 공화국이고, 남태평양에 떠 있는 섬나라입니다. 크고 작은 섬이 삼백 개가 넘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산호섬까지 셀 수 없이 흩어져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호주 오른쪽 바다 위, 뉴질랜드와 하와이 사이쯤, 점처럼 찍혀 있는 작은 군도입니다. 뉴질랜드 북섬 위쪽으로 약 이천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호주 동쪽 바다 밖으로, 하와이에서는 남서쪽 방향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세아니아, 그중에서도 멜라네시아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마마누카 제도는 이 피지라는 나라 안에서, 난디라는 관문 도시 앞바다에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의 모임입니다. 피지의 본섬 중 하나인 비티레부의 서쪽, 난디 해안에서 배를 조금만 타고 나가면 이어지는 열대 섬들이 바로 마마누카입니다. 관광청에서는 스무 개 정도 되는 섬들을 마마누카 제도라고 부르고, 여행사들도 대체로 이 구성을 기준으로 안내합니다. 섬들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고, 대부분 하나의 섬에 하나의 리조트가 들어서 있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섬 하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마을이 되고, 하나의 휴양지가 되고,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됩니다. 어떤 섬은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 여행객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고, 또 어떤 섬은 허니문과 커플을 위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끌어올린 형태입니다.
마마누카 제도의 매력은 사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물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모래는 밀가루처럼 하얗고 부드럽고, 발앞에서부터 바로 산호와 열대어들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미 잘 정리된 리조트와 각종 액티비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지 전체를 통틀어 봐도 이 지역은 “엽서 속에 나올 법한 바다 풍경”과 “편안한 휴양 인프라”를 동시에 갖춘 곳으로 손꼽힙니다. 피지의 다른 지역이 현지 마을을 둘러보고, 전통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쪽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마마누카는 한마디로 “휴양 특화”에 가깝습니다. 도시에서 쌓인 긴장을 내려놓고, 바다와 햇빛, 간단한 액티비티, 느린 시간을 누리기에 최적화된 곳입니다. 한국에서 멀리 날아왔는데, 머리 아프게 복잡한 계획 세우지 않고도 제대로 쉬고 싶다면, 마마누카 제도는 그 목적에 딱 맞는 군도입니다.
한국에서 피지로 가는 길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구간은 인천에서 피지의 난디라는 도시까지 가는 항공편입니다. 어느 시기냐, 어느 항공사를 타느냐에 따라 직항이 있을 때도 있고, 경유만 가능한 시기도 있습니다. 직항을 이용하면 비행 시간만 놓고 봤을 때 대략 열 시간 안팎, 대략 아홉 시간 오십 분에서 열 시간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경유편을 이용하면 중간에 대기하는 시간이 포함되기 때문에 전체 이동 시간이 보통 열네 시간에서 스무 시간 정도까지 늘어납니다. 홍콩, 싱가포르, 시드니, 오클랜드 같은 도시를 한 번 들렀다가 난디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난디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다시 섬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됩니다. 먼저 포트 데나라우 항구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거나, 미리 예약한 리조트 셔틀, 혹은 버스를 이용하면 보통 스무 분에서 서른 분 정도 걸립니다. 항구에 도착해 나면 마마누카 각 섬으로 향하는 고속 페리나 리조트 전용 보트에 올라야 합니다. 어느 섬을 목적지로 선택했느냐에 따라 배 타는 시간은 달라지는데, 난디에서 가까운 섬은 배로 약 삼십 분이면 도착하고, 조금 더 먼 섬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이 이동은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본격적인 풍경 감상의 시작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남태평양 바다 위를 달리며 주변에 떠 있는 섬들을 하나씩 스쳐 지나갈 때, “아, 정말 남쪽 바다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옵니다.
시간을 더 아끼고 싶거나, 여행을 특별한 장면으로 남기고 싶다면 난디 국내선 터미널에서 경비행기나 헬리콥터, 수상비행기를 이용해 바로 섬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략 열두 분에서 스무 분 안팎의 짧은 비행으로 끝나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산호섬의 모양과 바다 색깔은 평생 잊기 힘든 장면이 됩니다. 이렇게 인천에서 출발해, 중간에 한 번 경유하고, 난디에 도착한 뒤, 항구로 이동해 배를 타고, 마지막으로 섬에 내리기까지의 길은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보트에서 내려 모래사장을 밟는 순간, “이 정도 수고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마마누카 제도의 섬들은 대부분 그 자체가 하나의 명소입니다. 그래도 많은 여행자가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곳들을 소개해 보자면, 먼저 말로로와 카스타웨이, 마타마노아 같은 대표적인 리조트 섬들이 있습니다. 이 섬들 주변 바다는 색이 특히 곱게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해변에서 조금만 나가도 다양한 산호와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어 스노클링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환경입니다. 또 하나 유명한 곳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바 형태의 공간입니다. 넓지 않은 플랫폼 위에 바와 간단한 식당이 있고, 이 주변으로는 끝없이 에메랄드빛 바다가 이어져 있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데크에서 피지 스타일의 피자를 먹다가, 마음 내키면 바로 옆 바다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는 하루는 이 지역을 상징하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가족 여행자에게는 사우스 시 아일랜드나 트레저 아일랜드 같은 작은 섬으로 떠나는 하루짜리 투어가 인기가 높습니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데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을 만큼 아담하지만, 그 안에 스노클링, 바닥이 보이는 배를 타고 바다 구경하기, 카약, 어린이 프로그램 등 하루 동안 즐길 수 있는 활동이 빼곡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계적인 서핑 포인트로 유명한 타바루아와 나모투 주변 바다도 마마누카 인근에 있습니다. 일정한 파도와 바람을 가진 이 지역은 프로 서퍼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마누카 제도는 특정한 한두 곳의 유명 관광지를 찍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섬 전체가 숙소이자 놀이터이고, 그 섬 주변 바다가 매일 다른 액티비티를 선물하는 무대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