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뽕따러 가세 (1959)
Автор: 주현미 TV
Загружено: 14 июн. 2023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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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지명에는 그곳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경우가 많은데요. 서울 송파구의 '잠실'도 마찬가집니다. '잠실'이라고 하면, 요즘엔 많은 분들이 즐비한 아파트와 올림픽이 열렸던 종합경기장을 떠올리지만, '잠실'은 '누에 잠(蠶)'과 '집 실(室)'로, 조선 세종 때 양잠 장려 정책을 시행하면서 강가에 수많은 뽕나무를 심었고요. 이곳을 '동잠실'로 부르는 데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잠원동'도 지금의 국립양잠소에 해당하는 '잠실도회'가 설치된 곳이었는데요. 원래는 '잠실리'라고 불렀지만, 송파구 잠실동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잠실리와 인근의 신원리를 합쳐서 '잠원동'이 되었고요. 서대문구 연희궁 뒤쪽은 '서잠실'로 부르면서 역시 많은 뽕나무가 있었지요.
이뿐 아니라, 조선시대엔 궁궐 안의 넓은 후원에도 뽕나무가 많았는데요. 이곳은 '내잠실'로 부르면서 조선의 왕비들이 친히 누에를 치는 '친잠례'라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지요. 이렇게 뽕나무를 많이 심었던 것은 '잠업'을 진흥했던 조선시대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뽕나무를 먹은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로 짠 비단이 아주 귀했고, 그렇게 비단을 만들어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수익성 높은 국책사업이었던 거지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렇게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한 노력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은데요. 그래서 우리나라 민요의 한 장르로 '양잠가'라는 노동요가 따로 존재했고요. 1925년 나도향의 단편소설 '뽕'에서도 '뽕'은 곧 돈이라는 내용이 등장하고, 우리 속담에 '뽕도 따고 님도 보고'라는 말이 생겨났지요.
민요에 등장하던 '뽕'이라는 말이 우리 가요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5년 기생출신 가수 '노벽화'선배님이 '뽕따러 가세'라는 곡을 발표하면서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곡이 바로 '뽕따러 가세'였는데요. 노벽화 선배님은 당시 태평레코드사 문예 부장이었던 박영호 선생님에게 발탁되어서 '낙화삼천'이란 곡으로 데뷔했고요. '일야몽' '해금강 타령' '모랫벌 십리' '대동강 봄노래' '흘러간 청춘' 등 모두 42곡의 신민요들을 발표한 인기가수였지요. 노벽화 선배님의 애잔하고 포근한 목소리는 힘든 시절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부드러운 선율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사랑받았고요. 김성집 작사, 이기영 작곡의 '뽕따러 가세'도 역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사랑받았던 노래였습니다.
그러다 1959년, 같은 제목이지만 반야월 선생님이 원곡 '뽕따러 가세'의 신명나는 느낌을 새롭게 가사로 쓰고, 나화랑 선생님이 작곡하면서 새로운 버전의 '뽕따러 가세'가 발표되었는데요. 이 노래는 황금심 선배님의 목소리로 처음 방송전파를 탄 이후, 지금도 많은 후배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고요. 그 인기에 힘입어 모 방송의 프로그램 제목으로도 '뽕따러 가세'가 쓰이기도 했지요.
황금심 선배님은 1936년 오케레코드 전속가수 선발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당시 오케레코드사에선 당대 최고 스타였던 이난영 선배님과 장세정 선배님의 음반 출시 작업 때문에 바빠서 황금심 선배님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요. 결국 빅터레코드사로 옮긴 다음, '알뜰한 당신'이란 노래를 발표하면서 당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후,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겪어내면서 굴곡진 시대를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노래들을 불렀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뽕따러 가세'입니다.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세
칠보나 단장에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면 살짝쿵 가지
뒷집 총각 따라오면 응-응-응-응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성화로구나
음-음-음-음-음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세
앞 뒷집 큰 애기야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면 무슨 재미냐
오매불망 정든 님도 응-응-응-응
일만 추기고 만단설화를 풀어나 볼까
음-음-음-음-음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세
이쁜이 곱분이 뽕따러 가세
뽕따러 가면 낮에 나가지
휘영 청청 달 밝은 밤 응-응-응-응
진홍치마 얼룩이 지면 어이 할거나
음-음-음-음-음 뽕따러 가세"
예전만 해도 뽕을 따는 일은 시골의 일상적인 풍경이었지요. 집집마다 누에를 쳐서 길쌈을 하는 집들이 많았고요. 누에의 먹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누에 먹이인 뽕잎을 따는 일은 하루일과 중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특히 집안의 여인네들이 주로 뽕잎을 따러 다녔는데요. 바깥출입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도 여자들에겐 공식적으로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뽕따러 가는' 시간이었고요. 뽕따러 가는 큰 애기들의 발걸음은 사뿐했고, 그런 동네 처자들을 흠모하는 총각들의 가슴도 덩달아 두근거렸을 겁니다. 뽕따는 일이 일상적인 노동이었지만, 그렇게 일하러 가는 사이에도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설렘을 노래한 곡이 바로 황금심 선배님의 '뽕따러 가세'인데요. 지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옛 추억이 되었지만, 노래를 듣는 동안 어린 시절 마을에 가득했던 뽕나무들과 까만 보석처럼 익어갔던 오디의 달콤함, 그리고 수줍은 처녀와 총각의 설레는 연정을 떠올리시면서 사뿐사뿐 가벼운 마음을 다시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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