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조선편9) - "기해동정" 세종의 분노! 대마도를 불태우다!
Автор: 인투위드 사.이.언.스
Загружено: 20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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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외면하면, 역사는 더 뚜렷한 흔적으로 우리를 되찾는다.
13세기부터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 출몰한 왜구는 일본의 내란과 경제 불안 속에 성장한 약탈적 해상세력이었다. 고려는 외교와 군사적 대응을 병행하며 왜구를 제어하려 했으나 1350년 이후 침입이 본격화되며 국가적 위기로 확산되었다. 최영, 이성계, 최무선 등의 활약으로 일부 격퇴에 성공했지만 근본적 해결은 어려웠다.
1389년 고려는 박위를 보내 대마도를 정벌했고, 이는 이후 조선의 왜구 대책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수군 정비, 외교 파견, 회유책 등 다면적 전략을 통해 왜구를 통제했다. 특히 대마도에 포상을 제공하며 일본 내 친조선 세력을 길렀다.
1419년(세종 1), 충청도 비인현이 왜구의 공격을 받자, 상왕 태종은 삼군도체찰사 이종무에게 대마도 정벌을 명령했다. 이종무는 병선 227척과 병력 1만7천 명을 이끌고 출정, 대마도에 상륙해 적선 130척 나포, 가옥 1,900호 소각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매복으로 인해 조선군도 피해를 입었다.
전투 14일 만에 대마도 실권자의 항복 요청에 따라 귀환하였고, 이듬해 ‘계해약조’ 체결로 대마도와의 통상 질서가 수립되었다. 이후 왜구는 통교자로 전환되었고, 조선은 3포 개항(부산포·제포·염포)을 통해 제한적 무역체계를 완성했다. 기해동정은 무력뿐 아니라 외교와 시스템으로 왜구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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