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현판이야기 35편, 귀래정 / 안동MBC
Автор: 안동MBC NEWS
Загружено: 16 июл. 2018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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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10:02:25 작성자 : 보도팀
□ 귀래정(歸來亭)
유교현판 이야기:
-오늘은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하여 욕심없이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던 낙포(洛浦) 이굉 선생이 안동시 정상동에 건립한 ‘귀래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귀래정’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증(李增)의 아들인 낙포 이굉이 1513년 벼슬에서
물러나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지은 정자입니다.
낙포 이굉은 효성과 우애가 두터웠으며,
시문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25세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40세(1480)에 문과에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 문학, 사간원 헌납, 사헌부 지평, 공조 정랑, 청도 군수, 상주 목사 등에 임명되었습니다.
특히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한훤당
김굉필의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었으며, 중종반정 뒤 다시 개성 유수로 기용되었다가 1513년 사직하고 안동에 낙향합니다. 그리고
안동 부성(府城) 건너편 낙동강 남쪽 언덕에
귀래정을 짓고, 강호에 소요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귀래정’에는 고산 황기로가 쓴 ‘귀래정’
편액을 비롯하여 낙포 이굉의 원운(原韻)과
농암 이현보, 송재 이우, 택당 이식, 백사 윤훤(尹暄) 등 명사들의 시판과 본손 30여명의 차운 시판이 걸려 있습니다.
‘귀래정’에서 ‘귀래’의 의미는 중국 동진(東晉)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 첫 구절에 “고향에 돌아가세. 전원이 거칠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라는 유명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에서 산수와 벗하며, 자족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가 귀래정을 짓고, 스스로 읊조리다'自題'라는 시에
높이 솟은 외론 정자 인가와 마주하니 孤亭兀兀隔人家
짧은 노 가벼운 배 그 흥취 어떠하리 短棹輕舟興若何
강 가는 아득하여 푸른 이내와 어울리고 江上杳冥靑靄合
산 중은 기뻐한 듯 흰 구름이 자욱하네 山中怡悅白雲多
이 시는 산수와 벗하여 욕심없이 자족적인 삶을 즐기려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분주한 세상일을 잊고 전원에서 산수와 벗하며 자족적인 삶을 영위한 귀래정 주인인 이굉의
삶은 아우 이명이 귀거래하여 임청각을 세우고 풍류스럽게 살아간 삶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무한경쟁시대에 ‘귀래정’ 편액의 의미가 새삼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유교현판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의 권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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