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순교자들의 위대하고 거룩한죽음을 기억해주소서!!! 수원교구 손골 무명 순교자 묘 1
Автор: 김관수
Загружено: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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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순교자들의 위대하고 거룩한죽음을 기억해주소서!!!무명순교자들의 위대하고 거룩한죽음을 기억해주소서!!! 수원교구 손골 무명 순교자 묘
병인박해 때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박해를 피해 손골에 숨어든 신자 4분이 체포되어 수원으로 끌려가던 중 신봉동 개울가에서 처형되었다.
당시에는 ‘선참후계(先斬後啓, 먼저 참하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명령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사람들은 길가에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둬 개울가 작은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돌로 덮어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의 옛 이름이 서봉(시봉)이고 순교자들의 이름과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봉부락 무명 순교자 돌무덤’이라고 불리며 전해내려 왔다.
참고로 신봉동(新鳳洞)은 1914년 신리(新里)와 서봉리(棲鳳里)이 합쳐져서 신봉리가 되었다가 지금은 신봉동이 되었다.
수원교구에서는 순교자 현양사업을 하면서 1976년 12월 17일 신봉동에 있던 4위 무명 순교자의 묘를 미리내 성지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옮겨 모셨다. 이 해에 다른 곳에 있었던 무명 순교자들의 묘도 미리내 성지로 옮겼다.
손골 성지에서는 손골 교우촌에서 생활하다 순교하신 4위의 유해를 손골에 모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순교자 유해 안치를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차례 모임을 통해 준비한 다음 2013년 10월 22일 4위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를 손골 성지 내로 옮겨 모셨다. 4위 무명 순교자들을 하나의 광중(壙中)에 합장 형식으로 모시기로 하고, 묘를 조성하는데 우선 지하에 석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4위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를 4개의 항아리에 각각 모셨고, 봉분은 함께 하나로 만들었다. 손골 무명 순교자는 모두 4위인데 남성이 2위이고 여성이 1위이며 1위는 DNA를 채취하지 못해 확인이 안 된다. [출처 : 손골성지(윤민구 저, 성지 소개 책자) 내용을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8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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