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황희, 정말 청렴했을까?.
Автор: 알쓸잡식 TV
Загружено: 19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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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상식
알아두면 쓸모 있는 상식!
어쩌면 인생의 작은 순간들이
우리의 지혜가 되어 길을 밝힐지도 몰라요.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습니다.
소소한 지식 하나가,
어느 날 나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알쓸상식은 그 소중한 한 조각입니다.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때로는 삶을 반짝이게 할 기회를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하나 배워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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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은 조선의 명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삶의 이면에는 부패 논란도 존재합니다. 흔히 그는 청렴하고 온화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그의 청렴함이 항상 완전무결했던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의혹은 ‘인사 전횡’입니다.황희는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무려 20년 가까이 재상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과 가까운 인물들을 요직에 앉히고, 인사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세종실록』에는 황희가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사람을 무마하거나 내치는 정치적 움직임이 기록돼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사로운 청탁과 재산 축적’입니다.황희는 말년에 황해도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노비 수백 명을 거느린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당시 일반 사대부 수준을 크게 넘는 규모였습니다. 특히 지방 수령들이 황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토지나 물품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어, 일종의 부패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방 관리와의 유착’입니다.황희는 지방 관료들과 교류가 활발했는데, 일부는 그에게 뇌물을 보내고 관직을 청탁했다는 의심도 받았습니다. 세종은 이런 정황을 알고도, 황희의 공을 감안해 크게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황희가 부패에 연루됐다는 기록이 있어도 그가 조선을 안정시키고 유교 정치 질서를 세우는 데 기여한 바 또한 크다는 점입니다.결국 그는 완벽한 성인이 아닌,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던 인간적인 정치가였던 셈입니다.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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