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인문학] 무극, 태극, 황극의 이해
Автор: 홍익학당
Загружено: 20 окт. 2021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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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 수낮 대담) 무극, 태극, 황극의 이해
그림만 그려 놓고
페북에도 제가 공유해 놓고 했는데
원성이 올라오더라고요. “모르겠다.”
무극·태극·황극 그러면 이렇게 아셔야 돼요.
여기 황극에서 이 동그라미는 이거 전체입니다.
그럼 이 바깥은 뭘까요? 현상계.
여기는 절대계.
그러면 이 이상은 사실 다
절대계 얘기라는 거죠, 황극 이전에.
절대계에서 현상계에 나와야 황극이거든요.
그러면, 이건 다 절대계 얘기입니다.
원불교(일원상?)처럼 텅 빈 세계는 무극,
텅 빈 중에도 음양·오행 진리가
사실은 다 감추어져 있죠.
그런데 여기서는, 무극은 비활성화된 상태,
왜냐하면 현상계를 낳는 직접적 주체는
태극이에요..
여러분 ‘하느님’ 하면 태극이에요.
성경에서 “I am.” 그러시죠.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
그러면 태극입니다.
왜? 우주 창조의 주체는 태극이에요.
태극에서 우주가 나와요.
그래서 저기 『카발라』 같은 데서,
유대교 『카발라』에서 창세기 하느님은
태극에 해당하는 존재로 보고
그 위에 아인소프(Ayin Sof)라고 하는
‘무한정자’라는 하느님을 다시 설정해요.
왜? 창조 이전에는 어떻게 계셨냐?는 것이죠.
창조 이전의 하나님, 창조의 주체인 하나님,
그리고 우주를 창조하고 경영하는,
동서남북을 경영하는 하나님.
자, 텅 빈 하나님,
텅 빈 중에 모든 정보는 다 갖고 있지만
창조 이전 하나님,
즉 여기는 창조 이전이기 때문에
뭐가 없겠어요?
생각·감정·오감이 없습니다, 이 세계에는.
생각·감정·오감과 바로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는 어디겠어요?
태극 자리죠.
이해되시죠? 그러니까
이 점이라는 것은 텅 빈 중에 알아차리는,
알아차리는 의식의 초점이 선명하다.
알아차림이 여기도 있는데
알아차림이 선명해져요.
이때 알아차림은요, 알아차림만 있지
생각·감정·오감을 알아차리지는 않아요.
여러분 의식의 제일 밑바닥에는 이게 있습니다.
이게 ‘하느님 얘기’로 하면 먼 얘기 같죠?
내 얘기예요, 지금. 내 얘기고,
지금 여러분, 제 얘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 의식 안의 이야기입니다.
저 의식의 밑바탕에는
생각·감정·오감과 상관없이,
모든 것의 본체가 되는 의식이 있고요
생각·감정·오감을 직접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는,
그래서 이 텅 빈 무극 안에,
텅 빈 자신의 본체 안에 들어 있던 정보를
의식적으로 자각해서 알아차리고 있다가,
자, 보세요. 현상계에 바로
구현하고 있는 의식은 태극인 거예요.
이 세계는 생각·감정·오감이 바로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그림으로 보면 이상한데,
지금 여러분 한 생각이 일어나고 있죠?
제 얘기를 들으시면서.
생각·감정·오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감정·오감이 동서남북이 펼쳐진 것처럼,
생각·감정·오감이, 그리고 시간·공간이,
이원성이, 인과성이 쫙 펼쳐져서
지금 내 우주를 구성하고 있죠.
지금 여러분이 경험하는
이 생각·감정·오감의 세계를 알아차리는 자가
‘황극’이라고 하는 거예요.
경영자, ‘임금 황(皇)’ 자 써서
‘임금 노릇하고 있는 참나’ 이 소리입니다.
임금 노릇하고 있는 참나가 있는데,
현상계에서 임금 노릇하고 있는 이 참나,
여러분의 선악도 판정해서
인과도 다 집행해 주는 그 참나,
그런데 그 참나가 무슨 기준이 있어야
선악을 판정하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정보가 있어야, 원천 정보가 있어야
생각이라는 것, 감정이라는 것,
오감이라는 걸 만들어 내지 않았겠어요?
시간이라는 것, 공간이라는 게
마구잡이로 나왔을까요?
여러분이 아무리 명상에 들어갔다 다시 나와도
또 그 시간·공간, 그 인과성,
그 이원성은 또 펼쳐집니다,
생각·감정·오감 고스란히.
참나가 여러분의
생각·감정·오감에 대해서 모르는데,
그리고 그 인의예지의,
6바라밀의 진리 기준을 모르는데,
지금 여러분 내면에서
자명·찜찜 판단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요?
선악에 대한 심판이 일어날 리 없잖아요?
기준이 없는데..
그 기준을 품고 있는 참나,
생각·감정·오감과 연결되어 있고
생각·감정·오감을 바로 펼쳐낼 수 있고
생각·감정·오감에 대한 모든 선천 정보를
갖고 있는 참나, 성경에서 말하는 ‘I am’,
여러분의 현존자입니다.
나라는 영원한 현존,
그 안에는 생각·감정·오감과 무관하게
현존하고 있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바탕이 되어 줘야 한다는 거예요.
정보나 에너지나 다 여기서
끌어다가 쓰는 건데,
생각·감정·오감 너머의 ‘순수한 알아차림’,
제가 이걸 그래서 ‘순수한 존재감’.
여기는 ‘나’라는 ‘I am’ 자리니까
‘나라는 존재감’.
무슨 차이냐?
여기는 그냥 ‘나’로만 존재했어요.
여러분의 ‘가장 나’인 자리가 여기예요.
텅 빈 내가 있는데, 내가 나를 보는 거예요.
내가 나를 바라봤어요.
내가 나의 실상을 바라본 것,
내가 나의 속성을 반성적으로 바라본 거예요.
이걸 반조(返照)한다고 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의식이
여러분이 아는 참나예요.
일반적으로 접근하는 참나예요.
여기가 성령 자리입니다. 성령이고,
굳이 따지면 여기가, 태극이 성령 자리고
무극이 성부 자리예요. 더 본체 자리.
더 본체가 있어서 성령이 활발하게
생각·감정·오감으로 우주를 낳고 굴리고 해요.
뿌리가 있어요, 본체가.
여기에 본체가, 태극의 본체는 무극이고
황극의 본체는 태극입니다.
그리고 이 태극이 있으니까,
나라는 현존하는 존재가 있으니까
생각·감정·오감이 펼쳐지고 굴러가고
인과대로, 딱딱 뿌린 대로
거두게 되면서 가는 겁니다.
뿌린 대로 거두게 하려면
선악 판정 기준이 있어야 하니까
기준은 태극이 품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무극은?
무극에서 이미 기준은 다 있었네?
있는데 나로만 존재하지,
내가 나를 알아차리지 않으니까,
간단해요, 밖으로 생각·감정·오감이
못 나와요, 이 상태에서는.
어려우시죠? 그런데 또 알 만하죠.
아주 어려우면 포기하겠는데,
아리까리 하고 할 만할 것 같은데
또 어렵고 그러시죠.
그때 조금만 해서 알아내시면,
여러분 반야(般若)를 얻으신 거예요.
이걸 알아내시면 이게 다예요.
우주의 성인들이 알아낸 건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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