𝗦𝗼𝘂𝗻𝗱𝘁𝗿𝗮𝗰𝗸ㅣ‘멜랑콜리아’ 속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Wagner: Tristan und Isolde, Act 1 - Prelude)

안녕하세요, mimosa vinyl 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서로의 우주가 충돌한다는 말이기도 하죠.

참 낭만적인 이야기 같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우주의 끝을 알 수 없듯이
타인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 서로를 다 알지 못한 채
이해하고 이해받았다 착각하며 살아가지요.
어쩌면 인생은 아름다운 불협화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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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입니다.

덴마크 출신의 라스 폰 트리에는
문제적인 주제와 충격적인 설정을 통해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늘 간접적인 주제로 내면의 깊은 우울을 표현하던 그가
이번에는 아주 직관적인 방식으로 우울증을 말합니다.

심한 우울증으로 결혼식까지 망쳐버린 저스틴은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채 언니 클레어의 집으로 오게 되고,
이들은 지구로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거대한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불안하던 저스틴은 점점 초연해지고,
늘 이성적이었던 클레어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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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울증(melancholia)’이라는 이름의 푸른 행성이
지구를 덮치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약 8분 가량의 러닝 타임동안
종말을 앞둔 인물들의 초현실적인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지고,
거대한 멜랑콜리아는 마침내 지구를 집어 삼킵니다.

이 전위적인 오프닝 장면에서 등장하는 음악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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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불안하고 해소되지 않는 듯한 기분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다다르면 눈물이 날 것처럼 아름다운 이 음악은
바그너의 재미있는 시도에 의해 탄생한 곡인데요.
바로 ‘계류음(suspension)’ 의 발견입니다.

보통 화음은 한 코드 내에서 시작해 마무리되지만
‘계류음’의 경우에는 코드가 바뀌었는데도
앞 코드의 화성음이 계속해서 머물러있곤 합니다.
결국 곡 전체가 불협화음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계류음은 곡 내내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우리에게 해결되지 못한 감정을 선사하고,
이 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불협화음이 해결될 때의 해소감은 커지게 됩니다.

발목을 붙잡는 우울감을 떨칠 수 없었던,
결국 종말에 이르러 마음의 평안을 찾은
저스틴의 마음을 잘 표현한 듯한 전주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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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를 쓸 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깊이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늘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 욕망을 충족할 수 없고,
그리하여 삶은 끝없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짓된 욕망을 포기하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

회사, 결혼식, 가족, 삶이라는 욕망까지 버리고
‘죽음’이라는 진실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저스틴은
어쩌면 이러한 염세주의를 의미한 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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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거대한 멜랑콜리아가 제 마음에도 다가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의 행성이
제 세계를 향해 입 맞추듯 천천히 충돌합니다.

폭발적인 영화의 엔딩과 함께
멜랑콜리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 더는 슬프지 않고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습니다.

1부에선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저스틴의 거대한 슬픔과 고통이
비로소 읽히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여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멜랑콜리아’가 제 우주와 충돌하고 난 지금
그 불가능한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 불협화음인가 봅니다.



🎼 [Melancholia] OST: The City of Prague Philharmonic Orchestra
🎞 [멜랑콜리아], 2011, 라스 폰 트리에, 커스틴 던스트, 샬롯 갱스부르 외
🍿 현재 영화관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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