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주요 해전, 23전 23승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제480주년】
Автор: 이슈티비 issueTV
Загружено: 20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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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李舜臣, 1545년 4월 28일(윤음력 3월 8일)~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이순신 장군의 주요 해전, 난중일기 명언
1592년 5월 옥포해전 첫 대승! 옥포(玉浦)와 합포(合浦)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
勿令妄動。靜重如山(물려방동 정중여산,물령망동)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침작하게 태산처럼 무겁게 행동하라' 이순신 장군이 옥포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을 공격하기에 앞서 부하 장수들에게 준엄하게 내린 명령
1592년 6월 당포해전, 왜선 21척을 불태웠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왜군과의 해전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 반드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1592년 7월 한산도대첩, 학익진(학 모양의 대형 전법), 견내량(見乃梁)에 집결해 있는 왜군을 한산도(閑山島)로 유인해 50여척의 왜선을 격파·나포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 한산도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할 적에
어디서 한 가락 피리 소리는 남의 애를 끓나니..
閒山島哥
閑山島月明夜上戍褸
撫大刀深愁時
何處一聲羌笛更添愁
1592년 9월 부산포해전, 왜군의 근거지인 부산포(釜山浦)에서 왜군의 병선 100여척을 파괴했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장악했고, 왜군은 병력과 군수품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1597년 10월 명량대첩, 진도 울돌목에서 13척의 배로 130여척의 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명언.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足懼千夫)"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도 두려워할 수 있다
1598년 12월 노량해전, 노량(露梁)에서 500여척의 왜군과 싸워 200여척을 불태우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 장군은 도주하던 왜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 전투가 치열하다. 조심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숨이 끊어졌다.
임진왜란 1592년 (선조 25년) 5월 23일 (음력 4월 13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정유재란 1597년 (선조 30년) 8월 27일 (음력 7월 15일) ~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이순신 장군은 "지는 싸움을 한 적이 없다" 23전 23승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내가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순신 이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이순신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 이고 내가 가장 존(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같이 차마시고 싶어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도고 헤이하치로(청·일전쟁 1894~1895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견하고 칭찬함은 감당하겠으나 감히 이순신 장군과 비견함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의 구두끈도 묶을 자격이 안 되는 자입니다… "
영국의 해군 제독(군사학자) 지 에이 발라드 "이순신 제독이 전술뿐 아니라 기술적 측면에서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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