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altruism)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당신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Автор: AI 지성의숲 : 성필원 작가
Загружено: 25 ма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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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주의는 과연 실제로 존재할까?
▷ 당신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 묵자(墨子)의 겸애(兼愛)와 비공(非攻)
노벨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Gary Becker)는 이런 말을 했다. “원래 사람들은 경제적 이기주의에 따라 행동하는 법이므로, 단지 일부 낭만주의자들이 이러한 이기심을 인간사회의 근원 혹은 유일한 자극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경제이론이나 과학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위를 유발하는 자극제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일까?
다윈주의에 따르면 혈족관계 혹은 호혜적 이타주의만이 철저한 생존경쟁과 최고의 짝짓기 상대를 정하려는 본능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즉, 같은 유전자를 가졌거나 혹은 보답을 기대할만한 상대를 향해 베푸는 계산된 관용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뇌는 ‘공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헌신의 행위가 실제로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에 있던 국가들의 수많은 이방인들이 유태인을 숨겨주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데도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에 갇힌 유태인 노동자 1천여 명을 구출해낸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후에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나를 위해 일했던 직원들이다. 누구나 아는 사람들을 두고서는 인간답게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톨릭국제관계협회 국장인 이안 린든도 BBC와의 인터뷰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예전에 나는 짐바브웨에서 선교단체와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짐바브웨는 전시 상황이었고 잰들러(Zandler)의 군대가 정권을 잡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나는 그때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신부님 한 분이 하셨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내가 첫 번째 차량에 탈 테니, 당신은 두 번째 차량에 타시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물론 신부님의 말씀은 첫 번째 차량이 길에 깔린 지뢰를 먼저 밟게 될 터이니 나더러 안전한 두 번째 차량에 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그런 행동은 마치 집 주인이 손님을 문까지 배웅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자연스러웠고,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에서 배어 나온 행위였기에 요란을 떨거나 과시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방문자였고 그는 그곳에 선교를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누군가 지뢰를 밟을 수밖에 없다면, 다리가 잘라져 나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손님인 당신이 아닌 당연히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어쨌든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는 두 번째 차량을 양보할 정도로 타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보다는 덜 자극적인 이타주의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 동물보호캠페인이나 제3국가들의 빈민구호운동을 벌이는 이들만 봐도 그렇다. 이런 행위는 이타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직업에는 약간의 이타심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나 환자를 간호하는 일처럼 말이다. 두들겨 맞거나 칼에 찔릴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한이나 폭력배의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는 영웅 시민들도 빠뜨릴 수 없다.
정계에서도 이타주의자들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로 인정해준다. 자선을 베풀기 위해 이윤을 남기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줄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환경운동가들 또한 새로운 이타주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쓰레기통을 포장 쓰레기로 가득 채우는 호사를 거부하고, 환경을 해치는 탄소발자국, 즉 탄소의 흔적을 최소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봉사정신이나 의무감, 혹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과 같은 다른 동기로도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다. 냉소주의자라면 이타주의자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이기적인 사욕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얻기 위해서, 혹은 자선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죽은 뒤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치부하기에 이타주의는 너무 심오하다.
《이타주의의 마음》의 저자인 몬로는 그러한 숨겨진 동기들을 부인한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살펴본 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선택할 뿐이라는 것이다.
항상 이타적이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비록 공자가 그러한 무욕의 행위만이 문명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타주의자들을 좀 더 높이 평가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스스로 좀 더 관대해지고 타인과 공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이타주의를 사회적 선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이타주의가 자유시장의 기능을 저해할 것이 분명하다해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우리 주변에는 봉사 활동, 기부 행위, 자선 사업 등을 통해 이기주의보다 행복한 이타주의자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타주의를 신봉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국의 묵가(墨家)를 꼽을 수 있다. 묵가(墨家)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한 유가(儒家)와는 다른 독특한 가치관과 사상을 전개했으며, 특히 이타주의(利他主義) 와 겸애(兼愛) 를 강조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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