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한국사 339회] 예송논쟁은 정말 쓸데없는 입씨름이었을까? feat 허목 송준길 현종 태종 이방원
Автор: 팩스토리facstory
Загружено: 21 дек. 2024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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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일로 준비되지 못한 채 왕위에 올랐다.
역사의 바람은 준비되지 못한 왕이라 하여 봐주지 않고 마구 흔들어 댔다.
현종이 즉위하자 조선 개국 이래 가장 치열했던 논쟁 예송논쟁이 벌어진 것이다.(1차 예송논쟁 1659년)
효종이 죽자 서인과 남인들은 인조의 계비(둘째왕비)이며 다섯 살 어린 효종의 의붓어머니 장렬왕후가 어떤 상복을 입을 것인가에 대하여 논쟁하였다. 인조의 장남은 인열왕후가 낳은 소현세자였는데 일찍 죽었고, 차남인 봉림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런 효종이 죽었다. 크... 생각만 해도 복잡하고 머리 아픈 문제다.
효종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였고 정치인들의 논리력, 자존심, 세력 싸움이기도 했다.
신하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이 문제를 다투었다.
"대왕대비께서는 마땅히 3년복(참최복)을 입으셔야 하옵니다."(남인의 주장)
"아니옵니다.1년복(기년복)을 입으셔야 하옵니다.(서인의 주장)
현종은 누구의 주장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영의정 정태화는 송시열(서인)과 따로 논의를 했다.
"예학에 정통한 윤후가 3년복을 주장했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장자라 이름하고 죽으면 3년복을 입어준다는 의례를 취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인조대왕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현(昭顯)의 아들은 바로 ‘정이부체(正而不體)’이고 대행 대왕은 ‘체이부정(體而不正)’인 셈입니다."
이는 4종지설의 의례로 3년복을 입을 수 없는 경우를 4가지로 나눈것을 말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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