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TV] 부모님처럼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습니다 | 시즌3 E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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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처럼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습니다 | 시즌3 EP.15

부모님처럼 되지 않으려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네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 몇 년간 이곳저곳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아버지가 재혼한 그 가정에 들어가서 자라게 됐습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잦은 부부싸움, 경제적 어려움,
친엄마의 부재 속에서 어린 시절 내내 불안하고 초조하고 외로웠습니다.
특히 또 사회에서 이혼가정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는 생각에
제 복잡한 가정사를 늘 숨겼습니다.
상상으로 꾸며낸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밝은 성격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제 고민은 부모님과의 관계입니다.
부모님은 이혼과 재혼, 해외 불법체류와 추방,
노름과 사채빚, 암 투병...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우여곡절 끝에
두 분 다 혼자가 되셨습니다.
5년 전 경제적 자립이 힘든 상황에 처하신 부모님이
서로 의지하며 안정적으로 사시도록
제 저금을 다 털어 집을 사 드렸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그 이후에도 계속 다투고
각자 저에게 하소연하십니다.

제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덮어두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자식 역할을 하려고 애쓰는데
매번 두 분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라고 저를 자극하실 때마다
숨겨놨던 분노와 원망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마음먹고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아원에 버리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입장이 돼서 다행입니다’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독이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랑과 이해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이기적인 이유였습니다.
어찌 되었건 되돌릴 수 없는 이미 부모 자식의 인연이 있으니
자식 도리를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타이르며 물심양면 부모를 도왔습니다.
그보다도 내 부모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른생활을 했습니다. 도리를 지켰습니다.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제가 부모님을 이해하고 도우려고 애를 쓰는 동안
그만큼 정이 쌓이기보다
오히려 그분들이 자꾸 더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평생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절제 없이 사신 부모님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암에 걸려 투병하셨고
보험 하나 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자식에게 의지하면서도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홈쇼핑 중독인 엄마의 씀씀이,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보이는 모든 것에 소비를 서슴지 않는 아빠.
노후대비라는 개념이 전혀 없이
딸이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 하고
오히려 절약하는 저에게
너처럼 궁상맞게 살고 싶지 않다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 부모님과의 마음의 거리를
좁힐 자신이 점점 없어집니다.
제가 부모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제 마음은 더 깊이 상처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상처 주는 상대 옆에 붙어서 원망을 키우기보다
우선 상처 받은 제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해지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엄마가 암이 다시 재발해서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암투병 중이신데도
저는 마음으로 치유를 빌어드리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치유되어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 자연히 우러날 때까지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마음에 박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가시를 뿌리째 빼내고
부모님으로부터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과거의 집착을 떨치고
부모님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_
"사람은 단세포가 아니라서
어떤 경우든 복잡다단한 감정이 당연하다.
엄마 아빠에 대한 상반된 양극단의 감정은
부모의 삶에 대한 입체적인 반응이다.
서로 모순되더라도 그 감정은 모두 옳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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