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The Infant Samuel〉, c1776, Sir Joshua Reynolds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응답을 견디는 자세다 ”
Автор: 하하하(하루.하나.하다)
Загружено: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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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응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시작된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순수함’이나 ‘신앙심’을 떠올리려 한다. 아이, 하얀 옷, 두 손을 모은 자세. 하지만 이 장면은 그 익숙한 감상을 조용히 밀어낸다. 이 아이는 보호받고 있지 않고, 확신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어둠 속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The Infant Samuel〉. 이 그림은 믿음의 완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부름을 들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을 붙잡는다. 이 그림은 묻는다. “당신은 언제부터, 대답 없는 질문을 그만두었나요?”
🎨 122. 〈The Infant Samuel〉, c.1776, Sir Joshua Reynolds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응답을 견디는 자세다.”
시선이 멈추는 방향, 이 그림에서 눈은 아이의 얼굴에서 시작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한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이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끌려 올라간다. 그러나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형체도, 인물도, 명확한 빛도 없다. 오직 어둠 속에 스며든 희미한 기운만 남아 있다. 이 그림은 시선을 안내하지 않는다. 대신 시선이 도착하지 못한 채 머물게 만든다. 우리는 아이를 보는 동시에, 아이처럼 올려다보게 된다.
1️⃣ 시선의 설계
기도하는 몸의 불안정함, 아이는 단단히 무릎을 꿇고 있지 않다. 몸은 약간 기울어 있고, 손은 꼭 맞물렸지만 긴장되어 있다. 이 자세는 안정된 신앙의 몸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몸에 가깝다. 아이는 자신이 들은 것이 진짜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그래도 손을 놓지 않는다. 이 그림에서 몸은 신성함을 연기하지 않는다. 망설임을 연기한다.
2️⃣ 몸·사물의 연기 / The Holy Family with the Infant St John
빛이 도착하지 않은 색, 아이의 옷은 밝지만 주변은 어둡다. 이 흰색은 구원의 색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너무 일찍 드러난 색이다. 빛은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화면 전체에 고르게 퍼지지도 않는다. 얼굴과 손만을 겨우 드러낼 뿐이다. 가장 불안한 색은 어둠이 아니라, 이 아이를 완전히 감싸지 못하는 빛이다. 이 장면의 색은 위로하지 않는다. 기다림의 시간을 길게 만든다.
3️⃣ 색과 빛의 심리 / The Age of Innocence (c. 1788)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의 구조, 이 그림은 예언의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선택된 인물의 미래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장면은 ‘이후’를 전제하지 않은 채 멈춰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라, 부름을 들었다고 믿고 싶은 순간에 머문다. 이 장면이 정지된 이유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보이지 않는 구조 / The Ladies Waldegrave (1780)
3단계 몰입으로 이 어둠에 함께 머문다. 첫째, 정지된 시선. 아이의 눈이 향한 빈 공간에 시선을 둔다. 둘째, 개인 기억 연결. 이유 없이 무언가를 기다렸던 순간을 떠올린다. 답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시간. 셋째, 자기 위치 질문. 이 장면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기도하는 아이인가, 응답을 주지 않는 침묵인가, 아니면 이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인가.
5️⃣ 시청자 체험 장치
이후에도 어둠은 남아 있다, 이 아이가 기도를 마친 뒤에도 방은 밝아지지 않는다. 즉각적인 응답도, 분명한 신호도 없다. 이후의 시간은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이 자세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이 그림은 그 다음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시간을 견디는 감정만을 남긴다.
6️⃣ 그림을 떠난 뒤의 시간 (After the Frame) / A Nymph and Cupid ‘The Snake in the Grass’
지금, 이 그림이 필요한 사람, 이 그림은 확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불안하다. 즉각적인 의미와 결과를 찾는 사람에게는 답답하다. 하지만 질문을 멈추지 못한 채, 아직 오지 않은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닿는다. 이 그림은 묻는다. “당신은 아직 기다릴 수 있나요?”
7️⃣ 이 그림이 필요한 사람 (Who Needs This Painting) / Miss Elizabeth Ingram (1757)
이 장면이 숨기는 감정, 이 그림이 끝까지 말하지 않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경외도, 순수도 아니다. 혹시 아무 대답도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 만약 이 장면에 한 문장이 허락된다면, 아마 이런 말일 것이다. “혹시… 아무도 부르지 않은 건 아닐까.” 이 그림은 그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 두려움 위에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남긴다.
8️⃣ 그림이 숨기는 감정 (The Withheld Emotion) / Charles Lennox, 3rd Duke of Richmond (1758)
이 그림을 덮어도, 질문은 남아 있습니다. 대답이 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응답 없는 질문을 붙잡고 있었던 당신의 자세를 떠올려 보세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정직한 상태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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