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홍예문 (Hongyemun in Incheon)
Автор: 사라진 도시(고향)
Загружено: 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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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문은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일대에 위치한 아치형 석문으로,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이다.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은 응봉산 남쪽 산허리를 절개해 만든 터널형 구조물로, 1906년 일본 공병대가 착공하여 1908년에 완공했다. 높이 약 13m, 폭 약 4.5m 규모로, 다듬은 화강암 석축과 붉은 벽돌 천장을 사용한 일본식 토목기술의 특징이 잘 남아 있다.
개항 이후 중앙동과 관동 일대에 거주하던 일본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만석동과 동인천 방면으로 거류지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교통로가 필요해졌다. 기존에는 화평동과 내동을 크게 우회해야 했기에 이동이 불편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구와 동구의 경계에 놓인 응봉산을 직접 관통하는 길을 뚫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렇게 조성된 홍예문은 상인천과 하인천을 잇는 핵심 도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공사는 대부분 조선인 노무자들의 노동에 의존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폭약이나 기계 장비가 거의 사용되지 않아, 조선인들은 곡괭이와 정, 망치 같은 원시적인 도구로 단단한 암반을 깨뜨려야 했다.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안전 장비나 보호 조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낙석과 붕괴 사고로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 임금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거나 착취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며, 강제에 가까운 동원으로 현장을 떠날 수도 없었다.
일본인들은 산에 구멍을 냈다는 의미에서 홍예문을 ‘혈문(穴門)’이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 이 문은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피와 죽음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었다. 수많은 노무자들이 쓰러지고 희생된 기억은 ‘혈문(血門)’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남았다. 홍예문은 오늘날까지 도로로 사용되며 인천의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비참한 노동과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전하는 근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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