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귀족과 평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평민, 그리고 바뀌는 평민의 개념
Автор: 문역뜰
Загружено: 15 дек. 2022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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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의 승리는 낡은 씨족 제도를 무너뜨리고 폐허가 된 그곳에 국가를 세우게 하였다.
귀족과 평민은 얼마 후 그 국가 속으로 완전히 융화되었다.”
엥겔스
12표법(十二表法)
로마 귀족과 평민 간의 신분 갈등은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은 문제였는데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평민과 귀족의 신분 차이로 인한 차별은 왕정이 폐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평민과 귀족 간의 권리 투쟁은 그 후로 2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이 투쟁은 로마 공화정 역사의 초반부를 장식한 주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왕정 시대부터 존재해 왔지만 그들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아 귀족이 아닌 자가 귀족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로마 인구가 증가하면서 로마로 이주해 온 외부인을 기존의 쿠리아와 트리부스에 편입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보니 이미 귀족과 평민으로 분류된 자들 외에 쿠리아에 속하지 않은 부류가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에트루리아 왕조 때 새 이민자를 더 이상 쿠리아로 편입시키지 않은 영향도 컸는데 이들이야말로 훗날 로마를 이루는 평민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평민이라면 귀족들의 충성스러운 부하 혹은 그들과 특별히 관련 없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왕정 시대에 귀족과 평민의 경계는 불분명했지만 분명히 갈등은 존재했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대립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는데 로마의 왕은 대부분 귀족을 억제하고 평민을 구슬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통치 기반을 다졌습니다.
세르비우스(Servius Tullius)는 개혁을 통해 재산에 따라서 전 로마 인의 등급을 새로 나눈 결과 재산이 많은 평민의 지위가 향상되습니다.
하지만 공화정 체제로 넘어오면서 평민과 귀족의 갈등은 곪아터져 수면으로 떠올랐는데 귀족들은 대대적으로 자신의 특권과 지위를 강화하고 귀족 간 혼인을 통해 배타적인 신분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평민은 귀족의 정치적 압박 외에도 경제적인 빈곤에 시달렸는데 에트루리아 출신인 마지막 세 왕은 정복지를 가난한 평민에게 나눠 줬지만, 공화제가 시작되면서 이런 전통은 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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