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군사 반란"... 국군 장교 20여 명 사살한 여수·순천 사건의 진실 [호준석의 역사전쟁 EP.5]
Загружено: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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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의 뿌리는 미군정 시절 창설된 국방경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경비대는 신체검사와 구두시험만으로 병력을 뽑았기 때문에 남로당 세력이 쉽게 침투했고, 내부에서 공산주의 학습을 하는 부대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해 4월 제주 4·3사건이 발생하며 남로당의 무장투쟁이 본격화됐고,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 주둔 제14연대에 제주 파병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남로당 세력에게 전달되면서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1948년 10월 19일 밤, 여수 제14연대 일부 남로당원들이 “동족을 향해 총을 쏠 수 없다”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지휘관을 살해하고 무기고를 점령한 뒤 사병들을 선동했습니다. “제주에 가면 미군이 우리를 폭격한다”, “인민군이 이미 남하하고 있다”는 거짓 선전이 퍼지며 혼란이 커졌습니다.
곧이어 여수 시내로 진격한 반란군은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인공기를 내걸었습니다. ‘대한민국 분쇄’, ‘인민공화국 수호’라는 구호 아래 인민위원회를 세우고, 경찰과 공무원, 우익 인사들과 그 가족을 잔혹하게 학살했습니다. 순천, 보성, 구례, 남원 등지로 반란이 확산되며 호남 전역이 전시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곧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작전을 개시했습니다. 8일간의 교전 끝에 여수와 순천은 탈환됐지만, 반란군의 만행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되는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남로당 잔여 세력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이어갔고, 국군 내부에서는 대대적인 숙군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여수·순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복잡한 사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남로당의 체제 전복 시도와, 그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들의 비극이 교차한 사건이었죠. 이념이 아닌 사실로, 감정이 아닌 기록으로 — 역사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역사전쟁 #여수순천 #남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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