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7) 시간 흐름 차이 [창 2:7] 이재록 원로목사 명품설교
Автор: 만민중앙교회
Загружено: 1 мар. 2025 г.
Просмотров: 476 просмотров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강해(47) 시간 흐름 차이 [창 2:7] 이재록 원로목사 명품설교
이 시간은 창세기 강해 마흔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신 이유와 생령의 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생령은 영에 속한 몸이긴 하지만 근본 재료가 흙이지요. 따라서 부활체와 달리 생령의 몸만으로는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을 오갈 수가 없다 했습니다.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에는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있는데 생령의 몸 자체로는 이 공간을 통과할 수가 없지요. 단 우리가 맨몸으로는 날 수 없는 높은 하늘도 비행기를 타면 날 수 있어서 먼 곳도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듯이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비행체가 있다 했습니다.
그것을 타면 에덴동산 내에서뿐만 아니라 첫째 하늘에 속한 이 지구도 오갈 수 있지요. 첫 사람 아담은 이 비행체를 이용하여 지구를 자유롭게 오가며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낳은 아담의 후손들도 홍수 심판 전까지는 비교적 자유롭게 지구를 오갈 수 있었지요. 홍수 심판 이후로는 에덴동산 사람들이 지구를 오가는 데에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질서 가운데 허락을 받아 지구를 다녀가게 되었지요. 오늘날도 에덴동산 사람들은 이 비행체를 타고 지구를 다녀가곤 합니다. 이 비행체들이 지구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UFO입니다.
UFO란 쉽게 말해서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물체”이지요. UFO가 세계적으로 무수히 목격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UFO는 비행체보다는 빛을 내는 하나의 발광체로 보이지요. 이는 UFO 표면을 전자막과 같은 밝게 빛나는 막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UFO를 목격한다 해도 본체의 모양은 볼 수가 없고 단지 하나의 발광체로만 인식하게 됩니다.
UFO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세상에 있는 비행물체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비행한다는 점입니다. 비행패턴도 급상승, 급강하, 순간 가속, 예각회전(90도 이하의 각도로 회전하는 것) 등 놀라운 비행술을 보여 주지요.
UFO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둘째 하늘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은 공간의 성질이나 시간의 흐름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두 하늘의 시간 흐름은 과연 어떻게 차이가 날까요?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개미 한 마리가 있다고 합시다. 개미는 전속력으로 기어가고 있지요. 이때에 개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개미를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개미가 굉장히 빠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까요? 개미가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그 속도를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개미와 사람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 흐름의 속도도 다릅니다. 사람이 개미보다 빠른 것처럼 둘째 하늘의 시간 흐름이 첫째 하늘보다 빠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볼 때에 개미가 느린 것이지 개미는 자신이 얼마나 느린지 모르지요. 그냥 자기 세계에 적응하여 살뿐입니다. 만일 개미가 사람과 같은 인지능력이 있다면 자신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존재들이 세상에 많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이처럼, 첫째 하늘에 속한 사람은 둘째 하늘의 존재를 접하지 않으면 시간 흐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둘째 하늘의 존재가 첫째 하늘에 나타나면 그때는 시간 흐름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됩니다. 그 예가 바로 UFO입니다.
둘째 하늘에서 내려온 UFO는 첫째 하늘에 왔다 해서 특별히 더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 자신들이 운행하는 속도로 비행할 뿐이지요. 그런데도 첫째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느낍니다. 이는 마치, 개미의 입장에서 사람을 볼 때에 사람이 굉장히 빠르다고 느끼는 것과 같지요.
그러면 왜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에 이처럼 시간의 흐름이 차이 날까요?
이는 공간의 밀도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개의 풀장이 있다고 합시다. 한 곳에는 물을 채워 놓았고 다른 한 곳에는 개펄의 흙을 채워 놓았습니다. 두 곳의 내용물이 사람의 무릎 높이에 이르도록 했지요.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한 곳씩 들어가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갑니다. 이때 누가 더 빨리 걸을 수 있을까요? 물속을 걷는 사람이지요. 개펄 위를 걷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기도 어렵지요.
첫째 하늘인 육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마치 태어나서 지금까지 개펄에서만 생활한 것과 같습니다. 개펄 말고는 다른 곳을 가 본 적이 없기에 개펄에서의 삶을 전부로 알고 있지요. 개펄에서 움직이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일 물속을 걷는 사람이 개펄을 걷는 사람을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매우 느리게 보일 것입니다. 반대로, 개펄만 걸었던 사람이 물속을 걷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굉장히 빠르다.’ 생각하겠지요.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 이 두 세계 사이의 시간 흐름의 차이가 바로 이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세계인 둘째 하늘의 시간 흐름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면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에서의 시간 흐름은 마치 개펄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실제 시간 흐름의 차이는 이와 다를 수 있지만,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의 시간 흐름이 차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 공간에서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 사람들이나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나 각각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동일하지요. 우리가 하루가 지나간 것을 느끼듯이 그들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에덴동산에는 밤이 없기 때문에 하루의 개념도 우리와는 다르지요. 그러나 에덴동산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이처럼 에덴동산과 지구를 객관적으로 볼 때는 두 공간의 시간 흐름이 다르지만, 각 공간에서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비유를 들면, 두 대의 기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속 100Km로 달리고 다른 하나는 시속 50Km로 달립니다. 각 기차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창을 다 가려서 밖을 보지 못하게 하고는 평소처럼 행동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자신이 탄 기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에 탄 사람은 시속 50Km로 달리는 기차에 탄 사람보다 빨리 달리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두 기차가 달리는 속도가 이처럼 달라도 그 안에 탄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활동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두 기차의 창을 열어서 서로 상대편 기차를 보게 한다면 어떨까요? 그때는 속도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고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 흐름이 차이나는 영의 공간과 육의 공간이 만일 서로 맞닿게 된다면 우리도 그 차이를 확연히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 육의 세계에 영의 공간이 입혀질 때가 있지요.
그 한 예가 바로 열왕기상 18장 나옵니다. 45~46절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이 타고 가는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렸다고 했지요. 엘리야 선지자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순간 어떻게 역사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흐름이 훨씬 빠른 영의 공간을 엘리야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제 속도로 달렸음에도 마차 보다 빨리 갈 수 있었지요.
공항이나 쇼핑몰 등에 보면 ‘무빙워크’라는 시설이 있습니다. 걷는 속도가 같은 두 사람이 있다면 이런 무빙워크 위를 걷는 사람과 그냥 바닥을 걷는 사람 중 누가 더 빨리 걷는 것처럼 보일까요?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보폭이 같아도 무빙워크 위를 걷는 사람이 더 빠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영의 공간이 이 육의 세계에 덧입혀지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그 공간 안에서는 이 육의 지식이나 계산과 맞지 않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사와 표적들이 바로 영의 공간이 열리면서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고 일어난 일들이지요. 이렇게 영의 공간이 입혀지면서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면 거리에 상관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예수님께서 먼 곳에 있는 병자에게 말씀으로만 명하셔도 치료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한 백부장의 하인을 치료해 주신 일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 주신 일이 그러했습니다.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은 병자들을 대신해서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했지요.
그러자 마태복음 8장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수로보니게 여인에도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시자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했지요.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빛으로 나아가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고 순간에 병자에게 임하여 역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예수님과 병자들은 육의 공간에 있지만, 권능의 빛은 영의 공간에 속하여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고 순간에 가서 역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 곳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해서 “지금 하늘 한번 보세요.”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상대는 분명 여러분에게서 멀리 있지만 여러분의 말에 따라 하늘을 쳐다볼 것입니다...
#창세기강해#이재록목사#명품설교
이재록 목사
예수교연합성결회 증경총회장
만민중앙교회 원로목사
이재록 목사 설교시리즈 "창세기 강해"
http://www.manmin.org/02_sermon/?Code...
![창세기 강해(47) 시간 흐름 차이 [창 2:7] 이재록 원로목사 명품설교](https://ricktube.ru/thumbnail/R0amXHkqbtA/hq720.jpg)
Доступные форматы для скачивания:
Скачать видео mp4
-
Информация по загруз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