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하늘 아래 (Under Different Skies)

한국어
서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신은서를 지켜보며 자랐다. 한양 근교의 작은 마을, 논과 밭 사이 좁은 길을 함께 걸었고, 사계절을 맞으며 둘은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길을 나란히 걸어왔다. 은서에 대한 마음이 싹텄을 때도, 우리는 입을 닫았다. 말하면 멀어질까 두려웠고, 사랑보다 잃음이 더 두려운 나이였으므로. 그저 은서가 웃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돼.” 어느 봄날, 은서는 마을 고목 아래 앉아 우리를 불렀다. “서우리…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짧은 말 한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찢고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웃었다. “…그래, 잘 되었구나.” 입술은 웃고 있었으나, 마음은 아득히 먼 곳으로 떨어져 갔다. 그날 이후 은서는 매일 좋아하는 남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즐기지 않았지만, 은서가 행복해하는 모습은 누구보다 사랑스러웠다. 그게 충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은서와 그 남자는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밝고 따뜻해졌고, 우리는 한 발 뒤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범한 하루가 갑자기 무너졌다. 병자호란이 한창이던 어느 날, 은서의 남자가 남한산성 수비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은서는 무너졌다. 밤이면 우리에게 기대어 울고, 식음을 전폐했다. 우리는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시간이지날수록 은서는 쇠약해졌다. 약초와 한약, 선비들의 위로도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사랑을 잃은 여자는, 사랑과 함께 자기 자신도 잃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은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은서야… 난 여기 있겠다. 기대어 쉬어도 된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그리고 어느 비 오는 새벽, 신은서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세상이 끝나는 소리를 들었다. 장례식 이후, 서우리는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살아갔다. 은서가 떠난 자리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그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병자호란 전쟁이 고조된 변방에서 국경 수비에 차출된 서우리. 남은 슬픔과 결의를 마음속에 담아 진흙과 피가 뒤섞인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다. 인조와 조선을 대신해, 은서가 지키지 못한 삶을 대신 지키고, 은서가 남기고 간 세상을 대신 버티겠다는 마음 하나로 칼을 들었다. 청나라 기병과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던 어느 날, 서우리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검은 손에 익숙하지 않았으나, 그의 발걸음에는 두려움 대신 결의가 서 있었다. “은서야… 지금은 내가 지켜야 해.” 그는 마지막까지 싸웠고, 수많은 화살과 칼날 속에서 서우리는 결국 전장의 한가운데서 쓰러졌다. 눈을 감기 직전, 은서의 미소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빛났다. “은서야… 이번엔 내가 늦지 않을게.” 서우리와 신은서는 다시는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흩어져 간 두 영혼만큼은 다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English
Weoru had watched over Shin Eunseo since childhood. They walked together along the narrow paths between rice paddies and fields in a small village near Hanseong, sharing the changing seasons. They were more than friends, yet less than lovers, walking side by side along life’s quiet roads. Even when feelings for Eunseo blossomed, Weoru remained silent. He feared that speaking would drive them apart, and at that age, losing was far scarier than loving. It was enough for him just to see Eunseo smile. “If you’re happy… that’s enough.” One spring day, Eunseo called him beneath an old tree. “Weoru… I’ve found someone I like.” That single sentence quietly tore his heart apart. Yet, he smiled. “…I see. I’m happy for you.” Their lips smiled, but their hearts fell into a distant void. From that day on, Eunseo spoke daily of the man she loved. Weoru did not enjoy these stories, yet seeing her happy was more precious than anything. That alone was enough. Eventually, Eunseo and the man became a couple. She grew brighter and warmer than ever, and Weoru quietly watched from one step behind. But in a single instant, a normal day shattered. During the Byeongjahoran, Eunseo’s beloved died defending Namhan Fortress. Eunseo crumbled, leaning on Weoru at night, refusing to eat. No words could reach her. Over time, Eunseo grew weak. Her life, once full of love, was slipping away. Weoru held her hands every day, saying, “Eunseo… I am here. You can lean on me.” Yet her hands grew colder. And one rainy dawn, Shin Eunseo quietly passed away. Weoru heard the sound of the world ending. After her funeral, he lived like an empty shell. Every place she had touched weighed heavily in the air, and living within it was pure agony. Then, one day, war flared on the frontier. Weoru was called to defend the borders. With sorrow and resolve in his heart, he stepped onto a battlefield of mud and blood. He no longer fought for himself. He would protect the life Eunseo could not, and bear the world she had left behind. With that single purpose, he raised his sword. In a fierce battle against Qing cavalry, Weoru never retreated. His hands were unaccustomed to blood, but his steps were filled with resolve, not fear. “Eunseo… now, I must protect you.” He fought to the very end, and amid countless arrows and blades, he fell in the heart of the battlefield. As he closed his eyes, Eunseo’s smile shone closest to him. “Eunseo… this time, I will not be late.” Though Weoru and Shin Eunseo could never be under the same sky again, their spirits, looking toward each other as they drifted apart, would never be lonely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