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법문] '좋다'-'싫다'만 안 하면 바로 견성!
Автор: 홍익학당
Загружено: 30 июл. 2024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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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양심 #윤홍식 #홍익학당 #견성 #신심명 #좋다싫다 #본래삼매 #무심삼매 #유심삼매
240613 정토LIVE
참나자리 훅 들어가는 게
견성(見性)이에요.
견성, 참나는 늘 광명한데
에고가 몰라요.
참나는 늘 있죠.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게 아니에요.
늘 있는 자리인데 지금 참나가
우리 의식 안에서 빛나고 있어요.
부처님이 뭐라고 하셨죠?
모든 곳에서 빛나는 의식
그 말이 뭔 말이죠?
「께왓따경」에 참나는
무한하고 무형에 형체도 없고
한계도 없으면서
모든 곳에서 빛난다 그랬어요.
그게 뭐냐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참나가 알아차리니까
이 힘으로
요 참나의 힘으로 에고도
알아차리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 에고가 뭘 알아차려요?
6식, 5식 떠들고 있었잖아요.
6식 생각, 감정 6식은 생각, 감정
5식은 오감 별짓 다 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게 다 참나 덕인데
참나 덕인 줄 몰랐어요.
참나 존재도 몰랐어요.
그래서 견성이라는 건
참나를 바라보는 겁니다.
참나를 알아차리면 이렇게 되죠.
그림을 하나 더 그려볼게요.
참나에다 동그라미 하나를
더 그려야 해요.
왜? 이게 참나가 성(性)이면
요게 견(見)이죠.
견성 참나를 여러분이
의식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이거 의식 못 하면요. 이거 의식
못하면 참나 못 보고 있는 거예요.
참나는 늘 있어요.
그런데 내 우주에는 없어요.
나는 못 보고 있는 거니까
좋다-싫다 안 하는 순간
내가 참나를 보게 됩니다.
참나가 보입니다.
그런데 왜 좋다-싫다만
하지 마라고 하느냐
좋다-싫다 좋거나 싫거나
이게 우리를
우리를 탐진치(貪瞋痴)로
끌고 가는 게 이거예요.
우리 여러분
'각본론'에서도 얘기했지만
각본론은 결국 여러분을
탐진치로 끌고 다닙니다.
여러분 탐진치가 팔자예요.
여러분 탐진치에 여러분만의 탐진치
성향이 있죠 그게 성격이에요.
성격이 팔자(八字)예요. 사람마다
탐진치의 결이 달라요.
누구는 이게 좋고
누구는 저게 좋고
누구는 이게 싫고
누구는 저게 싫어요.
내향적 외향적 다 이것도 다
탐진치 경향성이죠. 그런데 보시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건 간에
이 좋다-싫다 때문에
우리 인생이 꼬이고
육도(六道)를 순회 합니다.
이 좋다는 게 뭐예요? 탐(貪, 탐욕),
싫다는 건 진(貪, 분노)
좋다-싫다 하는 이런 견해를 갖고
있는 게 치(痴, 어리석음)예요.
그럼 탐진치 바로 벗어나야
참나자리가 열반 자리인데
열반 자리 바로 들어가려면
뭐 해야 해요?
좋다-싫다만 안 하면 되죠.
지금 이 순간 좋다-싫다 때문에
내 운명이 꼬이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해요.
좋다-싫다 없앨 수도 없어요.
없앨 수는 없지만
이 순간 내가
놓을 수 있어요.
지금 이 순간 좋다-싫다 놔보세요.
참나 접속, 열반에 들어가서
탐진치 없는 자리에서 견성,
참나가 성(性 본성)이면, 본성이면
내가 에고가 의식을 해요.
의식을 하면 견(見 보다)이죠.
견성, 요 의식이 우리 6식 중에서
정중의식(定中意識)이라고
선정에 든 의식입니다.
6식 중에 이 정중의식이
6식이라는 게
우리가 우리가 지금 생각 감정하고
느끼는 지금 현재 의식이잖아요.
지금 현재 의식 이 의식이
참나를 못 알아채면요.
참나는 한겨울에 태양 같아서
눈을 못 녹입니다.
에고를 견성으로 인도 못해요.
참나도 견성으로 인도 못 해요.
에고가 반조(返照, 돌이켜 비춤)를
해줘야 해요.
에고가 밖으로 나가는
의식을 돌이켜 가지고
반조, 돌이켜서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밖으로 나간 의식을 돌이켜서
자기를 봐야 해요.
그러니까 좋다-싫다 안 해야죠.
좋다-싫다만 몰라 하면
내가 보여요 그게 견성
6식으로, 참나 유식학(唯識學)으로
말하면 참나 9식이거든요.
6식으로 9식을 봐야 해요.
참나라는 태양의 돋보기
이 렌즈 돋보기 렌즈를 대야
이 에고가 불이 납니다.
6남매가 출동하고
난리가 납니다. 됐죠
결핍감이죠.
좋다-싫다가 결핍감이죠.
저것만 있으면 딱 좋겠다.
저것만 없으면 딱 좋겠다.
저거만 있으면 딱 좋겠다.
저것만 없으면 딱 좋겠다.
요게 치, 어리석은 소리들
이게 인생을 꼬이게 한다.
우리를 육도로 우리를 바로 지옥으로
몰고 가서 고통을 겪게 하고
질투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탐욕에 빠져서 집착에 빠져서
허덕이게 만드는 건
좋다-싫다란 말이에요.
그래서 「신심명信心銘」 첫
구절에 뭐라고 그래요?
지극한 도은 어렵지 않으니
오직 좋다-싫다만 하지 마라.
좋다-싫다만 안 한다면
곧장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참나를 만나서 광명하리라 됐죠.
견성 좋다-싫다만 하지 마세요.
좋을 때 좋다 하지 마시고
싫을 때 싫다 하지 말아보세요.
좋다-싫다는 그러면 영원히
하지 말자는 거냐? 아니에요.
우리 에고는 탐진치가 본성이니까
영원히 좋다-싫다 할 거예요.
좋다, 탐난다, 싫다, 화난다.
이게 탐진이잖아요.
탐진에 빠져 있는 게
치, 어리석은 상태죠.
참나를 놓쳤으니까
탐진에 빠지죠.
그래서 에고 입장에서는
아 참나 모르겠고 나는 탐난다
나는 짜증 난다라고
계속 외칠 거예요.
어리석음 속에서 이 세 가지
탐진치 마음은요. 영원히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데 왜 좋다-싫다
하지 말자고 하느냐
좋다-싫다 안 할 때
참나 접속이 되잖아요.
참나 접속을 자꾸 해가면서
좋다-싫다를 쓰자는 거예요.
즉, 깨어서 좋다-싫다를
초월한 자리인 그 참나자리
이원성을 초월한 자리에
한 다리를 걸쳐두고
한쪽 다리로
좋다-싫다 하자는 거예요.
좋다-싫다 안 하면 바로
본래삼매(本來三昧)입니다.
참나랑 하나가 됩니다.
바로 좋다 싫다만
하지 말아보세요.
과거 몰라요. 미래 몰라요.
좋다-싫다 하지 마세요.
깊은 명상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마세요.
그냥 좋다-싫다만 하지 마세요.
이게 본래삼매입니다.
참나는 본래 삼매 상태거든요.
참나와 하나만 되면
우리는 삼매 덩어리가 돼요.
그대로 무분별정(無分別定)이고
무분별지(無分別智)죠.
참나랑 만났으니까 눈앞에
사물이 있어도, 보여도 상관없어요.
좋다-싫다만 하지 마세요.
눈앞에 사물도 다 안 보이고
참나만 보고 싶으면
무심삼매(無心三昧)예요.
무상삼매(無想三昧) 무심삼매고
현상계 안에서 에고가 굴러가면
에고가 굴러가면서 6남매
6바라밀를 출동시켜서
탐진치를 제압하는 걸
깨어서 하면
유상삼매(有想三昧)
유심삼매(有心三昧)고요.
그냥 좋다-싫다
말 안 하고
참나랑 하나 되는 거는
\본래삼매(本來三昧)
이 세 가지를 때에 맞게
잘 쓰시라고 그랬죠.
늘 본래삼매가 기본 베이스고
일 없을 때는 세상을 잊어도 보고
일이 생기면 탐진치를
잘 다스려서 써보기도 하고.
![[3분 법문] '좋다'-'싫다'만 안 하면 바로 견성!](https://ricktube.ru/thumbnail/U9xeDE2Qs8s/hq7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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