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사람아

내 사랑하는 사람아

강은혜

천년을 기다려도 만나지 못할
내 사랑하는 사람아

천년을 사랑해도 다 채우지 못할
내 사랑하는 사람아

심장을 휘젓는 희열
사무치는 그리움의 도가니는
너무 사랑해서 끓는 가슴이다

같이 있어도 더 보고 싶고
돌아서도 또 보고 싶은
내 사랑하는 사람아

새벽 바다가 달을 줍는 곳으로
바람 이빨 사이로 은하수 흐르는 곳
눈 속에 별이 총총히 일어서는 곳으로
함께 가자

이 세상 다 변해서
우리의 모습이 변해도
영원히 사랑해야 할 하늘이 주신
내 사랑하는 사람아

하늘에서 달 꽃이 부서져 내리고
하이얀 달맞이꽃의 웃음 구름을 밟고
너의 고운 얼굴 어루만질 때 짓는
행복의 미소
가슴에 여울져 흘러 강을 이루기까지
그대 곁에 머물고 싶다

천년이나
만년이나
바람의 머리가 허여게 희어져
흰 눈처럼
하얗게 내릴 때 까지 사랑해야 할
정녕 사랑하는 사람아

시평｜내 사랑하는 사람아(강은혜 시인)

이 시는 사랑을 시간의 단위로는 결코 측량할 수 없는 절대적 감정으로 선언하며 시작한다. “천년을 기다려도”, “천년을 사랑해도”라는 반복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사랑이란 애초에 채워질 수 없고 끝나지 않는 갈망임을 전제하는 주문처럼 읽힌다. 이 반복되는 호명 “내 사랑하는 사람아”는 연인을 부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시인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사랑의 다짐이자 기도다.

중반부에서 사랑은 감정의 상태를 넘어 육체적·우주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심장을 휘젓는 희열”, “끓는 가슴”이라는 표현은 사랑을 내면의 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몸을 흔드는 생리적 사건으로 드러내며, 그 격정은 곧바로 우주 이미지로 비약한다. 새벽 바다, 달, 은하수, 별들은 사랑이 개인적 감정을 넘어 세계의 질서와 맞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은 결국 현실의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 완성되는 상상의 공간이다.

이 시의 인상적인 지점은 ‘함께 있어도 더 보고 싶은’ 사랑을 통해 결핍을 제거하지 않는 사랑을 긍정한다는 데 있다. 보통 사랑은 결핍의 해소를 목표로 하지만, 이 시에서 사랑은 오히려 있음 속에서도 더 깊어지는 결핍으로 존재한다. 그 결핍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는 사랑을 운명적 서약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 세상 다 변해서 우리의 모습이 변해도”라는 구절은 시간과 노화, 죽음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그 위에 “하늘이 주신” 사랑이라는 초월적 근거를 세운다. 이는 사랑을 개인의 선택이 아닌 존재의 사명으로 격상시키는 장치다.

마지막 연에서 “바람의 머리가 허여게 희어져”라는 표현은 노년과 종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사랑의 끝을 죽음이 아닌 함께 흰 눈처럼 내려앉는 시간으로 묘사한다. 사랑은 불타오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쌓여 세상을 덮는 눈처럼 조용히 지속되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사랑을 말하지만, 실은 사랑을 통해 인간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을 노래한다. 「내 사랑하는 사람아」는 연가(戀歌)이면서 동시에, 변하는 세계 속에서 변하지 않기를 선택한 한 영혼의 장엄한 서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