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의 첫걸음, 해군 입영을 축하합니다!
Автор: TVSKA
Загружено: 21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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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Navy 海軍 정의 바다를 활동무대로 국가를 방위하고 해양에서의 국가이익을 확보, 증진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조직.
개관 해군의 주요임무는 일반적으로 해상통제, 세력투사, 해군력 시현, 전략적 억제 등으로 구분되며, 임무수행을 위한 주요 수단은 수상함정·수중세력·항공기 등의 입체전략이다. 우리나라가 바다를 통한 본격적인 군사활동을 전개한 것은 문헌상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부터이나, 현대 해군의 출현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이다.
해방 후 일찍이 해양에 대한 관심과 기술을 가지고 있던 몇몇 선각자들이 손원일(孫元一)을 중심으로 화합해 해양사상의 보급과 장차 해군 건설에 뜻을 두고 1945년 8월 21일 해사대(海事隊) 조직을 결의했다. 해사대는 서울 안국동 안동예배당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대원 30여 명을 모집해 해사교육을 실시했으나, 재정적 후원이 없어 대원의 식사·피복문제 등의 해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9월 30일 해사대는 석은태(石銀泰)가 이끄는 해사보국단(海事報國團)과 통합해 해사협회(海事協會)로 개칭하고 그 기반을 강화했다. 11월 1일 해사협회는 미군정청과 절충해 해안경비를 수행하기 위한 해안경비대의 조직편성에 합의했다. 해사협회는 미군정 당국의 협조를 얻어 1945년 11월 11일 이미 모집된 70명의 인원으로 구 표훈원(表勳院, 서울 관훈동)에서 해방병단(海防兵團)을 창설했는데, 이날이 바로 해군창설일이다.
결단식을 마친 다음날 경상남도 진해로 이동한 해방병단은 군항기지 내에 단본부를 설치했다. 다음해 1월 14일 「군정법령」 제42호(해안경비 임무의 국방사령부 이관)에 따라 해방병단은 국방사령부에 편입되어 정식 군사단체로 승인을 받게 되었다. 이어서 6월 15일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해방병단은 조선해안경비대로 새로이 발족했으며, 10월 1일 총사령부를 진해에서 서울로 이전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조선해안경비대는 국방부 훈령 제1호에 따라 해군으로 개칭되었으며, 9월 1일 국군에 편입된 뒤 9월 5일에는 ‘대한민국 해군’으로 정식 호칭되었다. 그러나 법적인 뒷받침은 1948년 11월 30일 「국군조직법」이 공포되고 이어서 「국방부직제령」이 제정됨으로써 1948년 12월 15일 대한민국 해군으로 법제화되었다.
해군은 「국군조직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영역 및 국가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해역에 대해 해상통제권을 장악하고, 그 해역에서 해상작전 및 상륙작전 수행의 임무를 가지고 조직을 편성한다. 해군 참모총장의 호칭은 해방병단 단장과 해안경비대 총사령관을 거쳐 해군 총참모장으로 호칭되다가 1954년 5월 19일 대통령령에 따라 참모총장으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의 군 조직은 그 사명, 규모, 조직의 구조, 직무의 성질에 따라 조직되며, 해군은 바다를 중심으로 한 전력형성의 극대화를 목표로 조직을 편성한다. 해군은 크게 총지휘부인 해군본부와 그 예하부대로 구분된다. 해군본부는 해군의 편성·장비·작전·병력관리·교육훈련·군수지원, 기타 해군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따라서, 해군본부에는 일반참모부 및 특별참모부서를 두고 있으며, 일반참모부에는 인사·정보·작전·군수·기획관리부서, 특별참모부서에는 감찰·법무·헌병·정훈·행정·통신·시설·의무·군종감실·연구분석실·조함실·비서실 등이 있다.
또한 해군본부의 예하부대로는 해상작전부대인 해군작전사령부, 상륙작전부대인 해병대사령부, 군수지원부대인 군수사령부, 교육부대인 해군대학·해군사관학교·교육사령부 등이 있다.
한국전쟁과 해군
1. 개전 초기의 해상봉쇄작전 및 전투
한국전쟁기 북한의 해군력은 각종 함정 30척과 80여 척의 보조선 등을 포함한 함정세력 및 육전대와 기타 병력을 포함해 약 2만여 명이었다. 반면, 남한은 소해정을 주축으로 한 33척의 함정과 6956명(해병대 1241명 포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동·황·남해에서 전투태세에 돌입한 해군은 동해 옥계해상(강원도 명주군 옥계면)에서 6월 25일 북한의 무장수송선과 조우해 5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북으로 격퇴시키고, 상륙정 1척을 격침하고 발동선 1척을 나포(拿捕: 전시에 교전국의 군함이 적국 또는 중립국의 선박을 자기의 지배 하에 두는 행위)했다.
남해에서는 PC-701함이 울산 동방 30마일 해상에서 남진 중인 1000톤 급의 북한 무장수송선을 4시간의 야간추격 끝에 대마도와 부산 사이 대한해협에서 6월 26일 격침시켰다. 한편, 황해에서는 옹진반도 부포(釜浦)에서 LST-801함과 JMS-302·307정이 고립된 육군 제17연대 병력을 인천으로 철수시켰으며, 7월 3일 강화도 수로를 경비 중이던 YMS-502정은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40급의 북한선 2척을 격침시켰다.
그 뒤 해군은 동·황·남해에서 본격적인 봉쇄작전을 실시해 해상을 통한 북한군의 침투를 미연에 방지했을 뿐만 아니라 함포지원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 둔화시키는 등 지상작전을 측면 지원했다.
해군육전대의 전투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동해안 금전·옥계에 1800명, 삼척에 800명, 죽변에 500명 씩 각각 상륙함에 따라 묵호경비부는 60명의 수색대를 출동시켜 33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실탄과 병력부족으로 묵호경비부로 철수해 자체 방위에 임하다가 6월 26일 LST함정편으로 포항으로 철수했다.
묵호경비부 주문진파견대는 북한군 60명이 승선한 적 발동선 1척을 격침시킨 뒤 육군부대와 함께 포항으로 철수했다. 묵호경비부를 흡수, 편성한 포항경비부 육전대는 7월 17일 7시간의 격전 끝에 807고지(구암산)를 점령하고 8월 17일 육군 수도사단과 합동으로 포항탈환작전에 참가해 포항을 완전 탈환했다. 포항경비부 육전대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500여 명의 북한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해군의 교육이념은 이순신의 호국사상에 바탕을 두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정예 장병을 육성하는 데 있다. 교육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국 해양수호를 위한 군인정신을 기른다. 둘째, 현대전의 과학화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군사지식을 습득하고 창조적인 군사기술을 연구, 개발한다. 셋째, 어떠한 상황에서도 싸워 이길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실전적인 전술·전기를 연마한다. 따라서, 이러한 교육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교육체계는 크게 학교·부대·기술교육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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