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2023년 드론촬영, 사라진 인천전도관 (Incheon Missionary Hall disappeared from 2020 to 2023)
Автор: 사라진 도시(고향)
Загружено: 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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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이 숭의동 107번지에 별장을 지은 것은 언제인가?
1908년, 알렌의 저서 Things Korean에 나오는 별장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고종 환궁 즉 1897년 2월 20일 이후에 지어진 것을 알려 준다.
1930년대 말 숭의동 107번지는 별장에서 학교로 변신하였다.
이곳을 학교로 사용한 첫 번째 사람은 이순희였다.
영화여학교와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1936년 불우한 소녀 3명을 데리고 계명학원을 시작하였다.
계명학원은 곧 4년제 소학교가 되었으며, 해방 당시 학생 수는 700명에 이르렀다.
숭의동 107번지는 1897년 별장, 1938년 학교를 거쳐 1956년 교회로 변신하였다.
250만원에 이곳을 매입한 인천전도관은, 60여 년 묵은 구옥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12월 약 300평 규모의 예배당을 완공하였으며, 이듬해에는 기존 건물에 약 100평 규모의 2층을 올렸다.
한때 인천을 휩쓸었던 이 교회는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978년까지 무려 20여 년간이나 이 자리를 지켰다.
인천전도관을 이야기하면서 박태선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그 해 가을 숭의동 107번지 낡은 건물을 부수고, 직접 벽돌을 지고 언덕을 올라 성탄절 직전에 교회 건물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1958년 여름 이 종교의 교세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해가 가기 며칠 전 그는 사기 및 공갈 혐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
인천전도관은 1978년 결국 문을 닫고 신앙촌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인천전도관이 떠난 후 숭의동 107번지에는 잠깐 공장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결국 이곳을 다시 차지한 것은 교회당이었다.
오늘날 예수중심교회로 불리는 한국예루살렘교회가 그것이다.
전도관이 박태선이 살았던 서울 원효로에서 시작되었다면, 이 교회의 본거지는 바로 숭의동 107번지라고 말할 수 있다.
발췌 : 인천광역시 남구 역사문화총서 1. 도시마을생활사, 숭의동·도화동 중에서
•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 107번지 인천전도관 사라지다. (The Inc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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