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119 대도굴 시대 – 조선고적조사사업 이후 도굴꾼이 들끓다
Автор: KBS역사저널 그날
Загружено: 14 февр. 2019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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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도쿄제국대학은 평양 석암리에서 낙랑시대의 고분 발굴을 시작한다. 교재로 쓰던 유물들이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돼, 고고학과 한국 고대사 연구 자료를 새로이 확보한다는 명목이었다. 발굴을 지휘한 쿠로이타 카츠미 교수는 군을 동원해 비행기를 띄울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평양 석암리 205호 발굴 사진을 보면 조선 총독까지 시찰을 나왔다. 낙랑 지역 발굴이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조선의 고분들은 한몫 잡으려는 도굴꾼들의 목표가 됐다. 1910년대 후반 창녕의 고분 중에 도굴되지 않은 것을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일본 학자들은 고백했다. 1925년 평양지역을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도굴로 구멍이 뚫린 봉분들이 보인다. 당시의 일본 학자들은 도굴의 원인이 고적조사사업이라고 말했다. 낙랑지역의 경우 세키노 타다시의 발굴 이후 도굴꾼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1920년대 평양일대는 대도굴의 시대를 겪게 된다. 도굴된 문화재는 제대로 된 발굴기록도 없이 개인의 손으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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