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특집다큐멘터
Автор: OurTV YouPD 아키비디움
Загружено: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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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특집 SBS 다큐멘터
소설가 한수산의 "꾸바노 꼬레아노"
1편: "갈수없는 나라"
2편: "에네깽의 후예들"
3편: 90년만의 귀향 "墨國에서 온 사람들~
1. 쿠바 한인이민사
1905년 5월15일, 1천33명의 人들이 멕시코 유카탄 베라크루즈에 도착했다. 3월 6일 인천항을 떠난지 두달여만의 일이었다이름은 (멕시코)에 가서 4년 기한만 채우면 금은보화를 한점씩 걸어쥐고歸國할 수 있다는 풍문을 듣고 포인 민초들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이민은 애초부터 속임수였다. 사탕수수와 애니영 농장에서 이들은 혹사당해야했다. 1910년 이 끝나자 한인들은 조국에 돌아가길 소망했으나 이미 한국은 일본에 강제합병돼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잃어버린 한인들은 일감을 찾아 멕시코 전역으로 물품이 흩어졌다. 1921년 3월, 이들 중 300여명은 임금이 높다는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카리브해 건너 쿠바로 향했다. 이것이 구마 의 시작이다.
쿠바이민초기에도 韓人들은 멕시코에서와 마찬가지로 혹독한 고통을 견뎌야만했다사탕수수 막하여 이곳에서도 애니쨩 (선박의 주원료가 되는 백마섬유) 농장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중노동에 시달려야했다. 그러나 이런 역경에서도 쿠바 한인들은 강한 공동체의식과 조국에도 단결해 나갔다. 이들은 이민 즉시 쿠바 국민회 지방회를 김성했고 국어교육 등 2세를 위한 교육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은 쿠바 한인들의 모든 노력의 핵심이었다. 이들은 2백 46원이라는 거금을 일정의 김구 주석앞으로 송금하기도 했다.
1945년 당시 쿠바의 한인들은 약 4백 명이었다고 한다. 현재 3-4세까지 합하면 약 3천명에 이를 것이라는게 쿠마관리들의 말이다. 1945년 對日戰爭의 축하를 위해 태극기를 내걸었던 이들도, 그러나 점차 쿠바사회에 編入도기 시작했다. 2-3세들은 현지에서 고급교육을 받고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조국분단과 쿠바혁명을 겪으면서 쿠바한인들 사이의 結束力도 떨어졌다.
지구의 반대편 작은 섬나라에서 중노동과 사회주의 혁명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한인들, 강산이 십수번은 바뀌었을 세월을 남의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 온 그들에게 이제, 모국어를 잊어가고 있다고 핏줄을 보존하지 못했다고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토록 돌아가길 소망했던 조국은 남의 땅이 되더니 둘로 갈라지기까지 했으며,
쿠바 한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과 역사는 본국에서 먼저
잊혀지고 지워져 버린 것이다.
2. 기획의도
단절의 기간은 너무 길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뛰던 故國 1111 세월의 파도속에
희미해졌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눈물로 가르치던 母國語는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다. 쿠바의 韓人들이 헤치고 나와야했던 歷史는 다른 어떤 초기 한인이민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혹독한 것이었다. 노예노동, 부패정치, 공산혁명, 조국과의 단절. 그러나 韓人들은 근면성과 교육열로 애니껭 농장에서 나와 사회지도층으로 진출했고 또 쿠바 현대사의 主役이었음을 자부하고 있다.
쿠바의 한인들은 노예이하의 삶속에서도 한국혼을 건설하려했고 조국독립을 애타게 갈망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들의 모국에 관한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이들은 아직도 우리 풍습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이민 2-3세들은 조국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쿠바라고 대답하지만 어쩔수 없이 느껴지는 피의 조국은 한국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조국을 찾길 원하고 있다.
쿠바는 북한과 함께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폐쇄공산사회이다. 쿠바속의 한인들을 껴안는다는 것은 어찌면 북한 동포들과의 머지 않은 만남을 준비하는 일일런지도 모른다.
멕시코로 떠난지 90주년!
쿠바의 한인들이 살아온 역사, 이들의 현주소 그리고 가슴속에 응어리진 조국애의 그리움, 이러한 것들을 소설가 한수산이 멕시코와 쿠바 현지에서 취재한다.
3. 취재 내용
1편: "갈수없는 나라"
-방송일: 95. 2. 27 (월) 밤 10:55 - 11:50
-내용
1905년 유씨 여인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멕시코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녀는 멕시코에서 재가하여 또다른 아들을 낳았다. 그의 두아들 임천택과 이성택은 쿠바 한인 이민사초기의 두 주축이 되었다. 한 사람 은 쿠하 한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단 한권의 책 「쿠바 이민사」의 저자로, 한 사람은 日, 조국독립으로 굳게 뭉쳤던 한인회의 대포로, 동지가 되었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형제가 된 이들과 이들의 후손들은 격동의 쿠바현대사를 헤쳐오면서 가게를 세웠다. 임천택, 이성택의 조국을 위한 항일독립과 쿠바인으로 살아가는 그들 후손의 이야기를 생생한 증언과 밀착취재를 통해 들어본다.
(후손) 임은조 (68세, 동아바나 인민정전위원회 위원장) 이은복 (53세, 전 MIG 전투기 조종사)
2편: "에네깽의 후예들"
방송일: 95. 2. 28 (화) 밤 10:55 - 11:50
-내용
멕시코 이민에서 실패를 본 한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조국은 사라졌다. 계약노동이 끝난 그 즈음 한국은 일본에 합병되었던 것이다. 조국을 잃은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임금이 높다는 쿠바로 향했다.
그러나 쿠바사회의 현실은 더욱 암담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애네깽 값은 농장에서의 일이었지만 에네깽의 형편없이 폭락해 버린 것이다. 그럴수록 그들은 강한 조국애로 더욱 굳게 뭉쳐져 갔고... 그리고 근 80년, 애니깽 농장의 한인노동자들의 후예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택시기사, 목사, 무명연주인, 주방장, 그리고 애네깽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얼굴로 쿠바의 역사와 현실을 살아온 이민 2,3,4세대들. 한국인의 얼굴로 쿠바사회의 민초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공개한다.
3편: 90년만의 귀향
"墨國에서 온 사람들~
-방송일: 95. 3. 7(화) 밤 10:55 - 11:50
-내용
중남미 한인이민사는 이제껏 우리의 안중엔 없었던, 잊혀진 역사였다.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조국땅을 밟아 보길 그리도 희망했던 이민 1세대와 그것을 보고 자라온 2,3,4세대들, 이제 사회주의 쿠바의 한인들은 1세대와는 다른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하고, 멕시코의 한인후예들도 연고를 찾지 못해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905년 이교창씨는 아들과 부인을 고국에 둔채로 멕시코로 팔려갔다.
그로부터 90년, 멕시코 후손이 한국의 형제를 찾아왔다.
90년간 단절된 역사를 거슬러 조국에 온 그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돌아갔을까? 1대가 찍힌 1957년도 8MM 필름 등 유품을 갖고 2,3,4대가 90년만에 귀향.
경기도 연천의 친척(4촌) 가족을 만나 신정을 같이 지낸다)
1대 이교창 (1887-1965)
2대 이종안 (66세)
3대 호세 루이스 (40세)
4대 호세 李 모레노 (11세)
#SBS특집다큐멘터 #소설가한수산의 "#꾸바노_꼬레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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