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조선편12) - "계해약조" 왜구를 막은 세종의 한 수
Автор: 인투위드 사.이.언.스
Загружено: 23 апр. 2025 г.
Просмотров: 1 153 просмотра
역사를 외면하면, 역사는 더 뚜렷한 흔적으로 우리를 되찾는다.
14세기 말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면서 혼란에 빠지자, 무장 해적 집단인 왜구가 등장해 조선과 중국 해안을 약탈했다. 조선은 군사적·외교적 대응과 함께 회유책을 통해 왜구를 통교자로 전환하려 했다. 특히 세종은 1419년 이종무를 보내 대마도를 정벌했고, 이후 회유책과 항구 제한 등으로 통교를 제도화하였다. 일본인들의 입국을 제한하기 위해 삼포(부산포, 내이포, 염포)를 개항하고, 공식 서계나 문인(입국증명서)을 통해 통제하였다. 그러나 대마도주의 권한 남용과 서계 위조, 무질서한 입국은 계속되었고, 이에 따라 조선은 세견선 숫자를 제한하는 통교 체계를 정비하게 된다. 그 결과 1443년 세종과 대마도주가 맺은 계해약조에서 매년 쌀·콩 200석을 대마도에 지원하고, 세견선을 연 50척으로 제한하는 협약이 체결되었다. 계해약조는 이후 임신약조, 정미약조, 기유약조 등으로 계승되며 조선의 대일 외교 질서를 형성하는 핵심 전례로 자리잡았다. 대마도는 무역 이권 확보에 유리했지만 제한된 교역량에 불만을 품고 위조와 불법 교역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해약조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 질서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 중요한 조약이었다.

Доступные форматы для скачивания:
Скачать видео mp4
-
Информация по загруз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