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금곡동 조선왕릉 홍유릉 명성황후 기신친향례 2025년11월22ㅣㄹ 은하수TV
Автор: 은하수TV
Загружено: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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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1897.10.12~1910.8.29) 창건 직후의 첫 주요 행사는 명성태황후 국장이 었다. 1897년11월22일 국장이 거행됐으니 명성태황후 시해(을미왜변 1895.10.8)후 무려 2년2개월 만이다. 왕실의 장례는 대개 3개월을 넘지 않았다. 국장은 이틀에 걸쳐 성대하게 치러졌다. 궁궐에서부터 장지인 동대문 밖 홍릉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장례 행렬을 스케치한 선교사 헐버트는 "황제가 하관과 봉분작업을 직접 지휘했고, 모든 일이 끝난 뒤 고종태황제와 순종황태자는 외국인들을 직접 만나 감사를 표했다"고 전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이러한 특이한 장례의식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나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또한 고종태황제가 황제로서의 의무를 멋지게 수행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는 말도 남겼다. 명성태황후 국장 관련 의궤는 모두 네 종류가 전해진다. 국장 진행 과정을 설명한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1637쪽), 산릉 조성과정을 설명한 홍릉산릉도감의궤(942 쪽), 시신을 모신 빈전과 위패를 모신 혼전에 대한 보고서를 담은 빈전혼전도감의궤 (930쪽), 그리고 홍릉의 석물 설치에 관한 보고서인 홍릉석의중수도감의궤(134쪽) 가 그것이다. 한 사람의 장례식 보고서가 이토록 방대한 것은 유례가 없다. 발인 행차 를 그림으로 그린 '발인반차도'를 보면 상여를 따라가는 수행원이 대략 4800여 명이다. 과거 어떤 왕의 국장보다도 수행 인원이 많다.
역사상 최초의 황후 장례식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매우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명성태황후 시해는 백성들의 마음에 지워지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방대한 의궤와 성대한 장례식은 명성태황후에 대한 진혼곡이면서 동시에 상처 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국상(國喪)'이었다
국장을 2년2개월이나 연기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명성태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의 성립은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 명성태황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고종태황 제와 온 국민의 분노와 자각, 이를 계기로 국권을 회복하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근 대적 민국(民國)'을 건설하려는 의지가 명성태황후의 처참한 시신을 놓고 뜨겁게 달 아올랐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모르고 있다. 당시 친일개 화파는 명성태황후의 죽음을 자업자득이라며 비웃었다. 그 친일개화파를 선각자로 숭 앙하는 시각이 오늘날까지도 우리 교과서나 역사책의 뼈대로 작용하고 있다. 명성태 황후의 죽음을 비웃는 시각으로 본다면 백범 김구가 21세 때인 1896년 일본인 육군 중위를 살해한 후 "국모의 원수를 갚은 것"이라고 백범일지에 밝혀놓은 이유를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발표한 '이토'의 죄목 15개 항'의 제1항이 '황후를 시해한 죄'였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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