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과학자 장영실
Автор: SINABRO 시나브로
Загружено: 21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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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蔣英實,
1389년~1450년 경 사망 추정)
=
세계 최고 과학기술자
조선 세종 때 상의원 별좌로 등용되어 과학 기술자로서 조선의 천문학 기술을 찬란히 꽃피웠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유민으로 소주·항주 출신이고, 어머니는 조선 동래현 기생이었는데,
장영실의 기술력이 뛰어나 세종 임금이 특히 아끼었다고 설명한다
장영실은 본래 동래현의 관노이나 기술자로서의 훌륭한 재주를 태종이 인정하여 발탁하였다
세종은 실용주의자로서 장영실의 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부왕의 뒤를 이어 중용하였다
세종은 장영실을 1421년(세종 4년) 윤사웅(尹士雄), 최천구(崔天衢) 등과 함께 중국에 파견,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 했다
1421년 중국 파견, 1423년 상의원 별좌 임명, 1434년 자격루 완성 등 주요 업적이 기록되어 있으나
출생년도는 명확히 기술되지 않았다
귀국후 장영실의 나이가 만으로 약34세 때인
1423년(세종 5년)에 천문기기를 제작한 공을 인정받아 면천되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389년에서 139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한다
장영실은
다시 대신들의 의논을 거쳐 종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에 임명되었다
1424년(세종6) 5월, 임금은 장영실을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시켰고 갱점지기(更点之器)를 만들라고 명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첫 물시계였다
그 후, 세종의 명에 따라 1432년부터 1438년까지
이천(李蕆)의 책임 하에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인 자격루
(일명 보루각루, 1434년)와 옥루(일명 흠경각루, 1438년)를 만들어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이때 제작된 옥루는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시간, 계절을 알 수 있고 천체의 시간, 움직임도 관측할 수 있는 장치로 흠경각(欽敬閣)을 새로 지어 그 안에 설치했다
이때 만들어진 천문 기구에는 천문 관측을 위한 기본 기기인 대간의(大簡儀), 소간의를 비롯하여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懸珠日晷), 천평일구(天平日晷),
방향을 가리키는 정남일구(定南日晷), 혜정교(惠政橋)와
종묘(宗廟) 앞에도 설치한 공중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밤낮으로 시간을 알리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규표(圭表) 등이 있다
이러한 공으로 1433년(세종 15년)에는 정4품 호군(護軍)의 관직을 더하였다. 장영실은 대단한 업적들을 남겼다
1434년(세종 16년)에는 이천이 총책임자였던,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하였다
그 당시 만들어진 갑인자는 약 20여만 자에 달하며 하루에 40여 장을 찍어도 자본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판본이 깨끗하였다
(그 이전에는 2장만 찍어도 자본이 흐트러져서 자본을 교정한 후에나 다시 찍을 수 있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기술이다)
천문기구 제작이 끝난 후에도 장영실은 금속제련 전문가로 관료생활을 지고 있던 중
세종대왕의 어가가 갑자기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이를 장영실의 임금에 대한 불경죄로 간주하고 의금부에서 책임을 물어 곤장 80대와 삭탈관직을 구형했으나, 임금이 형벌을 두 등급만큼 낮추어 주었다고 한다
장영실은 이후 역사에서 자취가 완전히 사라졌다
후세에도 그의 공교한 솜씨가 간혹 회자되었다
by SINABRO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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