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상)|벚꽃구경 |혜경궁홍씨|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일수 밖에 없었던이유
Автор: 달콤한책방
Загружено: 12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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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비극적 이야기를 담은 한중록을 손에 들었습니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가 쓴 작품입니다
사도세자는 영조대왕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였던 영조대왕의 노여움을 산 나머지 뒤주 속에 갇힌채 굶어죽는 비극적 인물
혜경궁홍씨는 몇십년 후에 후대사람들에게 사도세자가 죽게 된 이유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쓰기 시작합니다
후에 이 글들을 모아서 한중록이라는 한권의 책을 만들었답니다
한중록은 4번에 걸쳐 글을 썼으며
한이 담긴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남편을 잃고 한많은 삶을 살아야했던 혜경궁홍씨의 슬픔이 절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궁중여인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당시 여인들의 태도와 정신이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합니다
영조대왕은 왜 사랑하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야 했을까요
한중록이 쓰여진 배경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영조대왕은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대신들로부터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대신들이 나라를 걱정하지 않고
당파싸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파싸움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폈습니다
탕평책이란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다는 의미
그렇지만 그 당시 세력을 잡고 있었던 노론파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파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조는 50여년의 통치 기간동안 노론의 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누구보다도 백성들의 고통에 마음아파했고 천민인 노비들의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옹주들과 왕세자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고
조선왕조 최고의 현군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조대왕은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어린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정조는 그것이 당파싸움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조는 당파싸움을 뿌리뽑기위해 개혁정치를 단행
노론에 맞서기 위해 남인들을 등용하고 규장각을 설치했다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묘를 수원 화성으로 이장
정조는 수원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 했다
서울에서는 노론의 힘이 강해서 왕권강화가 힘들었기 때문
정조는 개혁을 채 이루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했던 영조정조는 성군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한중록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2장부터 읽겠습니다
@달콤한책방
좋은 명작소설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싶으신 분들께 편안한 목소리
혜경궁홍씨 지음
이동렬 엮음
지경사 이야기 고전
낭독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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