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현령 이흠례
Автор: Elon Musket
Загружено: 11 мая 2020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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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년(중종 18)~1585년(선조18). 조선 전기 무신. 자는 문보(文甫)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고조는 태종(太宗)이고, 증조부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이고, 부친은 금양부정(金壤副正)이다. 외조부는 진천송씨인 생원 송옹(宋雍)이고, 처부는 언양김씨 김수증(金壽增)이다.
1549년(명종 4)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54년(명종 9) 나주판관(羅州判官)에 제수되어 호남지방 해안에서 왜구를 소탕하는 데 기여하였다. 1557년(명종 12) 신계현령(新溪縣令)으로 황해도에 출몰하던 임꺽정의 무리를 많이 잡았다는 황해감사의 계본(啓本)에 따라 논상(論償)되었다.
1560년(명종 15) 봉산군수(鳳山郡守)에 제수되었고, 1561년(명종 16) 등급을 뛰어넘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되었다. 다음 해 6월에 청홍도수군절도사(淸洪道水軍節度使), 11월에는 전라도수사(全羅道水軍節度使)에 제수되었다.
1573년(선조 6) 충청수사(忠淸水使)로 있을 때, 욕심이 많고 비루하며 소행이 거칠고 망령되다며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1576년(선조 9) 김해부사(金海府使)로 있을 때, 관아의 권속을 함부로 데리고 갔다고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율석리 선산인데, 실전되어 오다가 1999년 9월 지석이 발견되었고 2001년 7월 12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35호(영등포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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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년 8월에는 서울에까지 임꺽정과 그 일당이 출몰하였다. 장통방(長通坊)에서 그들을 잡으려 하자 활을 쏘아 부장(部將)을 맞히고 달아났다. 이 때 임꺽정의 아내와 졸개 몇 사람을 잡았다. 그리고 임꺽정의 아내를 형조 소속의 종으로 삼게 하였다.
이 해 10월에 금교역(金郊驛)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길을 봉쇄하고 연도를 삼엄하게 경비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봉산에 중심 소굴을 두고 평안도의 성천·양덕·맹산과 강원도의 이천 등지에 출몰하며 더욱 극성을 떨었다.
이들은 황해도에서 빼앗은 재물을 개성에 가서 팔기도 하고 서울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겁탈을 일삼았다. 이리하여 황해도 일대는 길이 막혔다. 이들은 이 때 벼슬아치의 이름을 사칭하고 감사의 친척이라고 가장하면서 관가를 출입,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였다. 이 해 12월에 엄가이(嚴加伊)라는 도둑 두목이 숭례문 밖에서 잡혔는데, 바로 임꺽정의 참모인 서림(徐林)이었다.
서림의 입을 통해, 임꺽정 일당이 장수원에 모여 있으면서 전옥서(典獄署)를 파괴하고 임꺽정의 아내를 구출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 탄로났다. 또, 이들이 평산 남면에 모여 봉산군수 이흠례(李欽禮)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평산부와 봉산군의 군사 500여 명을 모아 평산 마산리로 진격하였다. 그 때 도둑무리는 산을 따라 내려오면서 관군을 무찔러 부장 연천령(延千齡)을 죽이고 많은 말까지 빼앗아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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