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1978(후지테레비) 11화
Автор: JOSTEIN KIM
Загружено: 21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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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하얀거탑은 후지TV에서 매주 토요일 밤 9시부터 1시간 분량의 “토요극장”으로, 1978년 6월 3일부터 1979년 1월 6일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총 31회. 본편 총시간은 약 24시간.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연인 타미야 지로(田宮二郎)가 드라마 주인공인 자이젠 고로(田宮二郞)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3일간 금식하며 그의 시체까지 직접 연기하는 열연을 펼친 것과 드라마 방영 중 자살한 것은 유명한 일화.
주연은 타미야 지로(田宮二郎). 야마자키 도요코의 소설 하얀 거탑의 세 번째 영상화 작품. 그 후 리메이크판으로서 후지 TV에서 연속 드라마가 1작품(2003년판), TV 아사히에서 스페셜 드라마가 2작품(1990년판, 2019년판) 제작되었다.
당시 양극성 장해 등에 시달리며 촬영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던 타미야 지로(자이젠 고로역)의 대표작이자 유작(작품 방영중에 자살)이 되었다.
원작 소설은 「하얀 거탑」과 「속·하얀 거탑」으로부터 구성되어 있어, 그때까지 영상화된 것은 「하얀 거탑」까지였던 것이, 당작품에서 처음으로 「속·하얀 거탑」까지의 완전 영상화가 이루어졌다(현재, 원작의 신초 문고판은 정편·속편을 합해 「하얀 거탑」전 5권으로서 발매중).
타미야 지로는 1966년 영화 하얀거탑과 1965년 라디오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자이젠 고로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특히 영화판은 일본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휩쓸었던 역사적 명작이다.
이 작품은 주연인 타미야 지로(田宮二郞)가 드라마화를 강하게 요망하여 제작된 것이었다. 그가 영화판에서 자이젠 고로(財前五郎)를 연기한 후에 속편이 쓰여져, 타미야(田宮)는 속편의 결말까지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영화에서 주연했을 당시는 31세였던 타미야도, 원작의 자이젠 고로의 연령 설정(42세)과 거의 같은 43세가 될 무렵에 , 타미야의 요망과 원작자 야마자키 토요코를 비롯한 주위의 협력도 있어, 3번째의 영상화가 실현되었다.
각본가 스즈키 나오유키, 원작 야마자키 도요코, 타미야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면서도 등장인물의 성격을 깊이 있게 파고든 각본이 짜여졌다. 탄탄한 배우진도 당시 쟁쟁한 면면을 갖췄다. 또 히가시사에코와 하나모리 케이코의 역할이 원작보다 커졌다.
프로듀서 코바야시 슌이치에 의하면, 타미야는 본작에서 메스를 가진 손에 리얼리티를 갖게 하기 위해, 개구리의 해부를 몇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 수술 장면의 대부분은 의사 및 환자의 허가를 받아 촬영된 실제 영상이다. 크레디트 타이틀에는 나오지 않지만, 로케이션은 카나가와현 이세하라시의 동해대학 병원에서 행해졌다. 타미야가 동해대학 병원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나니와 대학 의학부 본관은, 스기나미구 타카이도의 사회 복지 법인 욕풍회 병원 본관의 외관을, 오프닝의 나니와 대학 의학부 부속 병원의 외장은 시부야구 시부야의 제일 권업 은행(도쿄 사무 센터)의 외관을 각각 촬영해 맞혔다. 덧붙여 촬영은 당시의 후지 TV 카와다쵸 본사 및 그 주변에서도 많이 행해지고 있어 킨키 암센터의 건물은 당시의 후지 TV 본사 스튜디오동의 정면 현관, 나니와 의사회 회관의 건물은 2009년까지 실재한 후지 TV 제 1 별관의 정면 현관에 간판을 붙여 촬영되었다.
1978년 3월 26일부터 촬영 개시. 최초의 촬영은 제일 외과 교수실에서 위분문부암 환자·사사키 요헤이에의 약의 투여를 둘러싸고 자이젠과 사토미가 논쟁하는 장면(제13화)이었지만, 타미야는 조울증(양극성 장애)을 앓고 있던 일도 있어 비정상적으로 감정의 텐션이 높았기 때문에, 「이대로는 나중이 힘들어진다」라고 위기감을 느낀 사토미 역의 야마모토 마나부가 촬영을 중단하자, 타미야는 격노해 세트의 뒤쪽에 숨어 버렸고, 야마모토 마나부가 타미야에게 몇번이나 사죄하고 겨우 촬영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촬영에 열정을 쏟는가 싶더니 우라늄 채굴권(일설에는 석유라고도 함)을 취득했다고 주장하며 갑자기 통가(남태평양의 왕국)로 1주일간 가버리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제18화까지 녹화한 이후, 녹화는 1개월 간 쉬게 되었고, 타미야는 7월 29일에 런던으로 여행을 출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주위의 걱정과는 달리, 9월 8일 일본으로 귀국했다. 9월 17일부터 후반부의 재판 장면들의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감정의 텐션이 높았던 여행전과는 달리, 우울 상태에 빠져버려, 타미야는 울음을 터뜨리기만 하고 대사를 외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아내나 스탭이 필사적으로 그를 계속적으로 격려해, 공동 출연자의 협력으로 녹화는 11월 15일에 무사히 종료.
최종화 라스트 씬의 자이젠 고로의 죽음의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타미야는 3일간 금식해 완전히 암환자가 되어 버렸고, 자이젠의 유서도 스스로가 써, 그것을 대본에 추가시켰다. 전신에 흰 천을 걸어 스트레처로 운반되는 자이젠 고로의 사체는, 타미야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 녹화 후에는 '죽었다'고 라스트 신을 자찬했다. 그때 흘러나온 BGM은 모차르트 작곡, 레퀴엠 [눈물의 날 Lacrimosa]. 도중에 유족이 멈춰서 해부병동까지 따라가지 않는 것은 실제 모차르트의 장례식을 힌트로 삼은 것이다.
촬영 종료 후의 타미야는 완전히 허탈 상태가 되어, 「자이젠 고로의 후에, 어떤 역을 연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라고 프로듀서 코바야시 슌이치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1978년 12월 28일에 타미야는 엽총으로 자살했다. 이에 일본열도는 충격에 휩싸였고 이 시점에서 드라마의 미방영회가 2회분 남아 있었다. 이전까지는 12-13% 정도였던 시청률이 12월 30일의 최종회 직전회에서 급상승해 26.3%를 기록. 마지막 회는 더 상승해 31.4%까지 대폭 상승했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주연 배우의 자살이라는 비극이 시청률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에 대해 분개하는 코멘트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11화 줄거리
자이젠은 그가 염원하던 나니와대학 제1외과 교수에 취임하게되자마자,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외과학회에서 식도 외과 관련한 특별 강연을 해줄 것으로 의뢰하는 초청장을 받게된다. 세계의 자이젠 고로가 된다는 설레임에 독일 출장 준비로 바쁜 날을 보낸다. 그런 자이젠에게 사토미 조교수는 분문부 암으로 의심되는 환자 사사키 요헤이의 엑스선 촬영 진단을 부탁하게 된다. 자이젠은 독일 출장 준비로 거절하려 했으나, 마지못해 엑스선 촬영에 임하게되고… 그 환자가 자신의 미래를 좌우할 존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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