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의 근현대불교사이야기 제84: 아버지 대원 장경호의 뜻을 이어 불교대중화 헌신한 중원 장상문
Автор: 香山 이병두TV
Загружено: 14 мар. 2024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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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大圓 장경호 거사가 현대 한국불교를 지탱하고 일으켜 세운 공로는 말과 글로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컸고, 아들 중원中圓 장상문(이하에서는 ‘중원’) 또한 부친을 이어 한국불교 현대화와 대중화에 헌신하면서 불은佛恩에 보답하고 효도를 다해 ‘아버지를 더욱 빛나게’ 하였습니다.
대원의 여섯 아들 중 유일하게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중원은 멕시코 ‧ 스웨덴 ‧ UN주재 대사와 청와대 의전실장 등 외무공무원으로 봉직했습니다. 부친이 떠난 뒤 재산은 여섯 아들에게 똑같이 분배되었는데 중원은 “동국제강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아버지 유업이 깃든 대원정사와 대원회를 발전시키는 일에 힘쓰겠다”며 동국제강 주식을 팔아 (재)대원정사에 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1992년 11월 22일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중원은 1981년 대원정사 이사장과 대원회 회장에 취임한 뒤 새로 대원불교회관을 지어 [교양]불교대학을 활성화하고 ‘1년 과정 문화교양강좌’를 진행하는 대원불교아카데미를 개설하였으며, 문서포교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1985년 6월 기존의 ‘대원회보’를 월간 《대원》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잡지는 후에 월간 《대중불교》로 제호를 바꿔 1998년 폐간될 때까지 최대 3만 5000부를 발행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불교의 흐름을 바꾸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저도 몇 차례 글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이 된 뒤에 그의 문서포교 의지와 원력은 계간 《다보多寶》 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계간 《다보》는 1992년부터 월간 《불교문화》로 바뀌어, 30년이 넘게 발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편 중원은 출판사 ㈜대원사를 설립해 전통문화 지킴이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수백 권을 발간한 ‘빛깔있는 책들’은 중원이 직접 필자를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원고료를 후하게 지급하며 ‘대중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내용’을 주문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원의 불교대중화 원력은 생애 마지막 몇 년에 걸쳐 불교방송 설립과 초대 사장 취임, 그리고 신행단체인 대원회를 사단법인으로 확대 ‧ 개편한 1989년부터 ‘집집마다 부처님을 모시고, 직장마다 법회를 봉행하고, 마을마다 회관을 건립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시작한 ‘대중불교결사’ 운동으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진은 1989년 목정배 교수 등과 남양주 봉선사에서 연 제1차 ‘대중불교결사 전국대회’ 참가자들과 함께한 모습입니다. 젊게 보이던 이 세 분, 월운 스님을 마지막으로 이제 모두 이승과 인연을 다하고 떠나갔습니다. 이후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한 대회에서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불교백서 간행’ · ‘새 생명을 살려내는 장기기증본부 발족’ · ‘전국순회법회 개최’ · ‘불교방송 지방망 확장 100만 서명’ 등을 결의해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1992년 중원이 세상을 떠나고 6년 만에 그가 그토록 아꼈던 월간 《대중불교》가 폐간되고, 최근에는 출판사 대원사의 존재도 희미해진 데에다가 대한불교진흥원은 특정 학맥이 장악하여 창립 정신과 한없이 멀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이 현실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완벽한 장치를 갖추어놓고 떠나간 중원 거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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