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1장 10.26 박정희 시대의 종언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총성-2). 지하벙커에 소집된 사람들. 보안사 전 부대에 내려진 비상령.

00:13 지하벙커에 소집된 사람들
09:37 보안사 전 부대에 내려진
비상령

B-2벙커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내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기보다 어떤 이상한 기운이 내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것은 방금 전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에게서 풍기는 섬뜩한 살기(殺氣)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김 부장과는 잘 아는 사이여서 나는 평소 하던 대로 인사를 했다. 김 부장은 그저 “아, 전 사령관 왔소?”라고 한마디 하고는 나에게서 눈길을 거둔 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전 같았으면 이런저런 얘기도 건네고 했을 텐데 참 별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 관심을 둘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께서 대체 어떻게 돌아가셨다는 겁니까?” 나는 충격을 추스르며 황급히 물었다. 노 장관 자신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모든 정보를 가장 많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중앙정보부장이 와 있고, 국방장관과 군 수뇌들이 다 모였는데 국가원수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실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불가사의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캄캄하기만 했다.

대통령이 졸지에 돌아가셨다면 중앙정보부장이나 국방장관 등 이 자리에 와 있는 사람들은 의당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이후에 취해야 할 사항들을 빈틈없이 조치해나가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런데 모두가 저렇게 무대책으로 앉아 있으니 나라도 무슨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상부의 지시나 임무 부여가 없다 하더라도 대통령 서거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보안사령관으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대통령의 죽음에 쿠데타나 국가 전복의 혐의가 한 자락이라도 개재되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야 할 임무가 보안사령관인 내게 있는 것 아닌가.

확인되지도 않았고 내용도 막연한 것이었지만 ‘수십 발의 총성’, ‘청와대 인근’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 첩보 내용이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조차 종잡기 어려웠지만 나는 분명 보안사와 육본의 임시지휘소를 오가는 사이 그리고 청와대 인근의 수십 발 총성 첩보를 듣던 그 시점에서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을 해결해야 할 책무가 보안사령관인 나에게 지워질지 모른다는 어떤 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전두환 회고록 1권 제1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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