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단 사이비다 (왜 감옥에 갇히고 능욕을 당하는가?)
Автор: 레올람토라
Загружено: 8 февр. 2025 г.
Просмотров: 36 просмотров
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에 "레올람토라"를 검색하시거나, 아래의 링크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픈채팅방 링크 주소
https://open.kakao.com/o/gvbFarQf
1 감옥에 갇히고 능욕을 당하는 이유
바울은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있었다. 히브리서는 마치 자신도 바울과 함께 갇혀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린 바울과 예슈아의 몸으로서 한몸이기 때문이다. 한몸으로서 우린 고통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수고를 넘치게 했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아 고생을 했다는 것이고, 감옥에도 자주 갇히고 측량할 수 없이 매를 맞았고 자주 죽을 고비를 넘겼고 39대를 5번이나 맞았으며 3번은 몽둥이로 맞고 돌아도 맞아 거의 죽기직전 까지 갔었다." 이렇게 바울은 환란과 고난을 많이 당했지만 자신도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고 있다(고후11:23-25).
우린 이렇게 공개적으로 많은 고난을 받은 사람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바울이 정말 신실한 사역자일까? 어쩌면 과거에 지은 죄가 많아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아닐까? 저런 고생을 하지 않는 사역자들은 바울같은 죄를 짓지 않았고 바울보다는 나아서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바울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면 자신은 더욱 그리스도의 사역자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그들보다 부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아는 교사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누가 보아도 훌륭한 교사이다. 그런데 무명한 교사가 오더니 억울해 하면서 "나는 저사람보다 더욱 교사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뜻은 무엇이겠는가? 저 사람이 교사인 것이 확실하다면 자신은 더욱 교사이므로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약해지고, 능욕을 당하고 궁핌에 처하고 박해를 당하고 곤고한 상황에 처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강함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즉 무명한 자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도들보다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서 인정하지만 당시 바울은 스스로를 변호해야 할 만큼 무시와 멸시를 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유는 그가 많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이다. 욥도 고난을 당하자 친구들이 욥에게 숨겨진 죄가 있을거라고 비난한 것과 같다.
우리는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못한 자라서 저런 취급을 당한다고 여길 수 있으나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고 심지어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왜 그럴까? 바울은 그가 당하는 고난을 심지어 예슈아께서도 당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예슈아께서 죄가 있어 고난을 통해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슈아의 고난은 우리들을 대신한 것이었다(사53:3-5).
그러면 왜 죄도 없는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걸까? 이유는 예슈아께서도 약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여호와께서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예슈아를 살리셨기 때문이다. 즉 예슈아의 약함이 여호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의 약함이 강함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그때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이기 때문이다. 또한, 약할수록 강해진다는 것은 여호와의 법을 세우기 위해(당시 사람의 전통과 여호와의 법의 싸움이었으므로 막7:8) 감옥에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매를 맞는 것, 돌에 맞는 것,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 등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타협하지 않으므로여호와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교자들이 약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죽이는 자보다 약하기 때문에 죽지만 우린 그들을 승리자라고 보른다. 왜냐하면 결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고의 위협에도 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것을 통해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약함이 여호와의 강함이 되는 것이고 그분의 능력으로 이런 자들을 다시 부활시키시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도구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성도가 있다면 우린 쉽게 그가 그럴만 해서 당하는 고통이라고 비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솔직히 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알아 그 사람의 믿음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검증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상이나 꿈, 느낌으로 두번 죽이지 말고 그와 함께 갇힌 몸인것처럼 돌에 맞는 것 처럼 매를 수없이 맞는 것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고후12:10,11 13:4).
2 우리는 갇힌 자와 한 몸이다
대한민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있다. 두개의 나라인가? 아니다. 한 국가이지만 분단되어 있을 뿐이다. 우린 하나이다. 북한 사람도 대한 민국 국민이다.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에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김정은 체제 아래에서 태어났으면 우린 다이어트를 평생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00만이 굶어 죽은 북한에서 미쳐서 여기 저기 널려있는 시체를 먹기까지 하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인가? 대전시 인구도 150만이 안되는데 대전에 있는 사람이 모두 굶어죽어 길에 나뒹굴고 있다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수도가 나오지 않는 아파트는 양호하다. 재수가 없으면 정치범 수용소에서 매일 맞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강제노동하고 벌레 잡아 먹으며 살아야 한다. 그나마 운이 좋아 살려고 도망치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고 중국으로 넘어가면 인신매매나 장기매매로 팔린다. 이런 끔찍한 일이 차로 몇시간만 가면 그곳에서는 현실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어야 하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않으려고 하지 마라. 그러고선 몰랐다고 말하지 마라 하나님은 알고 있다. 행위대로 그대로 갚아주겠다(잠24:11,12)." 그러나 우린 얼마나 모른척하며 살고 있는가? 심지어 문정부 때는 탈북한 어민을 강제로 북송스켰고 그는 결국 고문을 당하다 처형됬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김대중 전대통령은 햇빛 정책으로 김정은 체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해주었고 그것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노벨 평화상 감이겠는가? 그냥 공범이 아닌가? 그래서 북한 어린이 사진을 찍어 공유한 미국 의사는 노벨 평화상을 주겠다고 하는 제의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벨 평화상을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거라면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계속 북한을 외면하면 결국 우리가 이렇게 되어 온 세계로 부터 외면당할 것입니다. 우린 그들을 구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북한에 갇힌 사람들과 한몸이라 생각한다면 우린 이렇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굶주림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을 먹일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먹여야 한다. 우리 나라에 석유와 가스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북한 주민을 먹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하여 그들과 함께 통일 한국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미 망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한다면 그들에게는 절망이요 우리에게도 절망이다. 그러므로 모두 통일을 말하나 마땅히 자유민주주의 통일해야 한다. 그들의 절망이 우리의 절망이기 때문에 우린 더더욱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잠24:11,12).
3 진리로 거짓없이 사랑하라
히브리서는 형제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린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당연한 말일 수 있지만 세상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수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있다. 세상에는 일반적인 사랑뿐 아니라 동성간의 사랑, 동물과의 사랑, 물건과의 사랑, 자동차와의 사랑, 심지어 근친 상간에 소아성애까지 각양 각색의 말도 안돼는 사랑이 판을 치고 있다. 또한 동성애를 수용하는 사람들과 교회는 오히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과연 사랑이 없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인가? 사랑이 없어서 동성애자들을 수용하고 감싸주지 못하는 것인가?
그러면 저들이 말하는 사랑은 뭘까? 같은 단어이지만 개념이 다르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죽을 죄로 정하셨지만 세상은 사랑이라고 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해도 성경적으로 해야 생명이 되고 믿어도 성경적으로 믿어야 생명이 되고 하나님도 성경적으로 알아야 생명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썩지 아니할 씨이고 진리이기 때문이다(벧전1:22,23). 왜냐하면 말씀이 곧 여호와시고 여호와는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념은 성경을 통해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래서 율법을 확인하지 않는 자에게 화가 있는 것이다.
4 결혼은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최초의 결혼은 애덴에서 아담과 하와일 것이다. 부부는 남자와 여자이고 이것이 창조질서이다. 이렇게 부부가 만나 거룩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왜 여호와께서 아담에게 한명의 아내를 창조하셨을까? 아내가 두명? 세명? 혹은 72명? 솔로몬처럼 1000명의 아내를 창조하시면 아담은 1000배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 말라기 선지자는 거룩한 자녀를 위해 한명만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말2:15).
거룩한 부부가 거룩한 가정이 되고 거룩한 자녀가 양육되며 이들이 모여 거룩한 공동체가 되고 더 나아가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을 해체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고 반국가세력이 하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부부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 동성애자들이 하는 일이다. 음란한 부부를 만들어 음란한 자녀를 키우고 음란한 공동체와 나라를 만들면 그들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나름의 욕망을 위해 이런 일을 하지만 결국 사단의 전략을 위해 쓰임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결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카페에서 계속 ~~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Доступные форматы для скачивания:
Скачать видео mp4
-
Информация по загруз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