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07권, 선조 31년 12월 2일 계축 7번째기사ㅡ선조실록107권, 선조 31년 12월 6일 정사 3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332)
Автор: 경천애인
Загружено: 3 ма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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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국 군사를 본국에 보내는 일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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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김응남의 장례 비용을 대주게 하기를 건의하다
선조실록107권, 선조 31년 12월 4일 을묘 3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군문 도감이 수군과 승리한 것에 대해 중군과 담화한 내용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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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이 말하기를 「속임수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사위를 불러 온다는 것은 구원병을 청하려는 것이니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일이다. 」 하였으나, 진 도독은 듣지 않았다. 14일 1척의 작은 배를 보냈는데 왜인 8명이 타고 있었다. 그 뒤에 이순신이 말하기를 「왜선이 나간 지 이미 4일이 되었으니 구원병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묘도(猫島) 등지로 가서 파수하여 차단시켜야 한다. 」 하였다.
‘18일 4경에 여러 곳의 구원병이 크게 몰려와 드디어 대전이 벌어졌는데 포와 화살은 쏘지도 않고 불뭉치만을 적선에 던져 2백여 척을 소각시켰다. 그러자 옷가지와 온갖 물품이 바다를 덮었는데, 행장은 떠내려오는 물품과 하늘에 치솟는 화염을 보고서 구원병이 크게 패한 것을 알고 외양(外洋)으로 도망쳤다. 먼 곳의 구원병도 그들의 선봉이 패한 것을 알고 감히 와서 구제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만약 며칠만 더 지체하여 사방의 구원병이 모여 왔더라면 왜교(倭橋)의 일이 매우 위태로왔을 것이다. 대개 행장의 계책은 겉으로는 강화를 하는 체하면서 몰래 구원병을 청하여 먼저 주사를 함께 치고 이어 육군을 공격하려고 했던 것인데, 적선의 선봉이 이미 패하여 흉계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하늘의 뜻이 천리에 순종하는 자를 돕는 것인 듯하다. 21일에 주사가 남해로 나아갔으나 왜적은 벌써 도망치고 없었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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