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진본기(4부) / 진나라 제후의 염원 / 중원을 향하여
Автор: 인문학 TV 고경
Загружено: 29 окт. 2020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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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고전 사마천 사기 역사서
진본기(秦本紀) 4부 (춘추시대중기~전국시대중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본기에 실려있는 진나라 목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춘추시대 약소국이었던 진나라는 중국 대륙 서쪽 변경에 치우쳐 있어서 중원의 다른 제후국들과는 교류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 초기 군주인 ‘진양공(秦襄公)’때 주나라 천자로부터 제후국으로 인정받고, 진나라 목공에 이르러서는 지혜롭고 현명한 인재, 백리해, 건숙, 공손지, 유여 등과 같은 유능한 인물을 등용하며 진나라의 영토를 넓히고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노력을 했었습니다. 따라서 후대 사람들은 진목공에게 춘추 패자라는 칭호까지 부여했던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진본기 내용 중, 목공 이후 춘추시대 중기에서 전국시대 초기까지 그러니까 진시황제의 6대 조인 진헌공까지의 내용으로 (BC 620~BC362) 약 260년 간의 진나라 군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 속 진나라는 여러 제후국들 중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제후국으로 명맥만을 유지해가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마천도 진본기 역사서에 진나라 제후의 재위 연도는 기록했지만 그 내용에 들어가보면 중원의 다른 제후들 이야기를 더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진나라는 지리적으로 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중원의 다른 제후국들은 진나라 영토를 탐하지도 않았고 굳이 중원의 비옥한 영토를 뒤로한 채 서쪽으로 진출해야 하는 필요성도 없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진나라는 제후국 들로부터 관심 밖의 나라였습니다. 다만 변경을 가까이 두고 있던 당진과는 수많은 분쟁과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어갑니다. 결국 서쪽의 변방으로만 있던 진나라는 목공 이후 260여 년이 더 지나 전국시대에 들어 진효공이 재위하면서 강성해 지기 시작하는데요, 오늘은 그 효공 이전까지의 진나라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고 효공 이후의 내용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목공 이후 진나라 군주들의 계보를 살펴가며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정에 대한 설명
구정(九鼎)은 고대 중국 왕조의 왕권에 대한 상징입니다. 줄여서 정(鼎)이라고도 부릅니다.
경공의 묘지 발견 발굴 이야기
순장 제도에 대한 내용과 개인적 생각
#진나라 #사마천 #순장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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