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0일 부활경축 새벽예배 일산은혜교회
Автор: 일산은혜교회
Загружено: Прямой эфир состоялся 19 ап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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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은혜교회 새벽예배
설교 : 이광하 담임목사
제목 : 누가 돌을 굴려 주리요
본문 : 마가복음 16:1-8
누가 돌을 굴려 주리요 (마가복음 16장 1~8절)
첫 번째 부활절, 부활의 증인은 여성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까지 동행했던 여성들입니다. 마가복음 15장과 16장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세 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본 증인의 이름이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된 것을 바라본 증인의 이름이고, 안식일이 지난 후 부활을 목격한 증인의 이름입니다. 그들은 에수님의 길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십자가에서 무덤까지, 함께 동행한 유일한 제자들입니다.
만약에 이분들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을 증언할 증인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죽음을 맞이했는지, 예수님의 시신이 어느 무덤에 안치되었는지,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부활을 확인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의 조건은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죽음과 무덤을 목격한 자여야 합니다. 열두 제자들은 두려워서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여제자들은 이 참담한 과정을 목격하면서도 끝까지 흩어지지 않고 동행했습니다.
교회는 여인의 증언을 따라서, 십자가를 기억하고 부활의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경험한 십자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지거 쾨더 신부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예수님의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예수님을 그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바라본 장면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자, 보십시오. 로마 군병이 예수님을 눕혀서 십자가에 못질을 합니다. 태양은 빛을 잃고 검게 변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표정이 보이십니까? 절망과 슬픔과 공포와 연민과 원망과 서러움과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포로된 얼굴입니다. 화가는 이 얼굴 중에서 여러분의 얼굴을 찾아보라고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달린 예수님의 얼굴은 바로 당신의 얼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해설하는 하인츠 페터 얀센은, 이 그림의 압권은 가운데 눈동자라고 말합니다. 검은 태양은 눈동자입니다. 누구의 눈동자일까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동자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 같은 광경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습니다. 그 눈동자를 따라서 마가복음 16장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요? 모든 제자들이 두려워서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담대합니다. 향품을 챙겨들고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무덤으로 찾아갑니다. 향품을 가지고 가는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할 때, 향유를 발라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 지난 후, 늦었지만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무덤을 향해 갑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저는 십자가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길은 애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부활을 목격합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서, 신명기 21장 23절 말씀처럼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라고 선포하고, 예수님을 저주 받아 죽은 자로 모욕했습니다. 애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애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리마대 요셉과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년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정부에서는 애도를 막지 않는다고 했지만, 빈소를 차리면서 희생자의 사진을 걸지 못하게 했습니다. 위패에 이름이 없는 빈소를 차렸습니다. 애도를 막은 것입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운 죽음으로 모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저항했습니다. 예수님이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고, 반드시 존엄하게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따를 ‘예죽세맞’의 길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세상에 맞서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길. 예죽세맞입니다. 여인들은 지금 맞서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여인들은 예수님께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두었다가, 2절을 보면, 안식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돋을 때에 무덤으로 갑니다. 이 분들은 율법을 모르지 않습니다. 안식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시신이 율법 규정을 따라서 만질 수도 없는 것으로 알았다면, 향품을 들고 무덤으로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향품을 들고 모욕 당한 몸을 존엄하게 하기 위해서 무덤으로 갑니다. 예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끝까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신실한 모습입니다. 3절을 보면 서로 말합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막 16:3)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이 질문은 정의에 대한 요구입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를 수 있도록 돌을 굴려줄 사람이 왜 없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이 무덤에 이르렀을 때, 이미 그 무거운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누가 돌을 굴려 주리요” 그 질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행동하십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 2:24)
하나님은 고통 소리를 의로운 기도로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구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기도 소리로 들으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 존재를 지워버린 이들을 돌보시고 기억하십니다. 부활은 그냥 일어난 기적이 아닙니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정의를 구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신실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사건입니다.
지거 쾨더의 그림을 다시 생각해보시겠습니까? 그림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슬픔에 싸인 얼굴들을 덮고 있는 것도 무덤 문을 가로막고 있는 돌들입니다. 죽음이 모든 것을 가져버렸다는 절망. 죽음이 끝이라는 낙심. 우리도 죽을 것이라는 공포와 불안. 무덤 문을 가로막고 있는 돌은 죽음이라는 돌입니다. 돌이 무덤을 막고 있어서 끝났다고 생각하는 제자들은 부활을 보고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죽음이 끝이 아니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갔던 마리아들은 열린 무덤을 지나 부활을 살아갑니다.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을 굴려 주리요?” 탄식하며 기도하며, 무덤 같은 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이 절망의 돌, 슬픔의 돌, 차별의 돌, 장애의 돌, 질병의 돌을 굴려주리요 탄식하면서 기도하면서 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도 무덤 문을 부활의 새로운 시작이 되게 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믿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돌을 굴리는 것은 주님의 일입니다. 우리를 정의를 구하고 인자를 행하며 신실함으로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부활은 놀라운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여인들은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은 부활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성금요일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일어나는 부활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는 부활입니다. 성토요일 모든 희망이 무너져버린 듯한 침묵 가운데 일어나는 부활입니다. 부활절 아침 다시 살아나는 생명이 부활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다함께 부활을 선포하면서 아침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 #일산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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