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 만 해전 2부]-죽음의 협곡으로 행진, 수리가오 해협 해전//조종의 NAVY썰(해군 이야기)
Автор: 조종 JOJONG Ch (Not control)
Загружено: 29 мар. 2020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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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부얀 해전에서 구리타 함대는 5차공습까지 받으며 철저하게 두들겨 맞았고, 무사시는 결국 시부얀에서 침몰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군은 필리핀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필리핀은 연함함대 전부를 맞바꾸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되는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구리타 함대가 사실상 두들겨 맞는 사이, 구리타 함대의 조력을 맡은 니시무라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마지막 전함 대 전함간 교전을 준비한다. 오늘 이야기 할 네이비 썰은, 레이테만 해전 2부, 수리가오 해협 해전이다.
1944년 10월 22일 보르네오에서 보급을 마친 니시무라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을 향해 출격했다. 이때 구리타 함대는 이미 출격을 한 뒤였고, 보급에 차질을 겪던 니시무라 함대는 구리타 함대가 출격한지 8시간 30분만에 겨우 출격했다. 이들의 임무는 구리타 함대의 조력을 맡아, 적 수상함대 화력을 분산시키고, 수리가오 해협을 통과해, 레이테 섬으로 진출, 해상을 봉쇄해, 상륙부대의 접근을 거부하는것이었다. 이에 니시무라함대는 시마함대와 민다나오 섬 앞바다에서 함대를 하나로 합쳐, 수리가오 해협에서 대기중일것으로 예상하는 7함대와 맞붙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삐꺽대고 있었다. 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함대간 무선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떄문에 함대간에 소통이 부족해, 연계는 커녕 제대로 만나는것도 힘들었다. 이 때문에 니시무라와 시마 함대는 서로 만나지도 못한채 결국 개별적으로 수리가오 해협을 돌입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그리고 10월 24일 오전 2시, 모가미는 정찰기를 사출했고, 정찰기는 레이테만 상공에서 전함 4척과 보급함 80척의 발견했다고 보고한다. 정찰기가 본 것은 킨케이드 제독 휘하의 7함대였다.
한편 미 해군 7함대 사령관 킨케이드 중장은 정찰기에서 니시무라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으로 돌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에, 홀시제독의 제 38임무부대 3군 휘하에 엔터프라이즈와 프랭클린은 공습을 하기 시작한다. 오전 9시 40분 공격기 20기가 니시무라 함대에게 접근했고, 이들을 폭격한다, 이 공습은 니시무라 함대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킨케이드 제독의 7함대는 나시무라 함대가 야간에 수리가오 해협에 돌입할것으로 예상, 24일 12시 15분에 지휘하에 있는 전 함정에게 야간전 준비를 명령하고 니시무라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전력은 전함 6척 중순양함 4척 경순양함4척 구축함 26척에 어뢰정 39척이었다. 니시무라함대는 공습을 받은 뒤 속도를 높혀 예상 시간보다 훨씬 빨리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하게 된다.
한편 시마중장은 공습을 받고 있는 구리타 함대의 정보는 받았지만, 니시무라 함대가 공습을 받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 때문에 시마함대는 아직 니시무라 함대가 적에게 발각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니시무라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에 접근하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라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고 이 때문에 당초 민다나오섬 앞바다에서 만나지도 못한채 니시무라 함대와 46km나 뒤쳐져있었다.
이 시각 니시무라 함대는 미 해군 어뢰정을 상대로 소해작전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함대의 바깥쪽에 구축함들을 배치해, 어뢰정에 접근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에 대응했던것, 하지만 미 해군 어뢰정은 회피기동으로 일본군의 포격을 회피했고, 야간이기 때문에 명중률 또한 떨어졌다.
그리고 3시 10분, 모가미에게 어뢰가 접근한다. 모기미는 이를 회피했지만, 후소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우현에 어뢰를 맞게 된다. 이로 인해 후소는 우현으로 기울어지면서, 속도가 떨어지게 되었고, 낙오되기 시작한다. 이 어뢰 공격으로 후소는 함내 화재가 발생했고, 후소는 침묵한다. 그리고 잠시 후 미치시오와 야마구모에게 어뢰가 다가온다. 밤이 되고 난 뒤, 계속해서 어뢰정의 공격에 경계를 하며 쌓인 피로로 인해 미치시오와 야마구모는 결국 피격된다미치시오와 야마구모는 이 어뢰 피격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미 해군 구축함 및 어뢰정들의 어뢰 공격으로 인해 니시무라 함대는 구축함2척과 전함 1척이 전투불능이 되 버린거다. 안 그래도 니시무라함대의 대부분의 화력이 전함 두척에 몰려있는데 그 중 한척을 잃음으로써 함대의 화력은 싸우기도 전에 절반이나 줄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시무라의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수리가오 해협에서 미 해군 7함대는 다가오는 니시무라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미 니시무라 함대가 올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방열까지 마쳐놓은 상태였다.
3시 51분, 미 해군과 13500m거리에서 레이더 관제사격으로 미군은 니시무라 함대를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첫 포탄은 야마시로에게 날아갔으며, 이 포격으로 야마시로는 함교에 화재 및 3번 4번포탑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1,2번 포탑만 사용하게 된다. 완벽하게 미군의 화망에 걸려든 일본군은 포격 섬광을 보고 응사에 나섰지만, 이미 전력상 압도적으로 열세인 상황인데다가, 미 해군은 모든 화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T자 진형으로 일본군을 맞이했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야마시로에게 구축함들은 어뢰를 쐈으며, 이 때문에 야마시로는 우현 기계실 부분이 파괴되면서 속도가 떨어지게 된다. 결국 야마시로는 미 해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버티지 못하고 탄약고가 유폭이 나게 되면서 야마시로는 침몰하게 된다. 야마시로의 대폭발을 본 미군은 남은 일본군함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모가미 차례였다. 이에 모가미 또한 함교 및 방공지휘소가 피탄이 되면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모가미의 함장은 어뢰를 버릴것을 명령하면서 모가미는 어뢰관 유폭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판단이 있어서 그런지, 모가미는 미 함대의 사정권 밖으로 도망가는데 성공했고, 니시무라 함대에서 구축함 시구레와 함께 수리가오 해협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한편 시마함대는 니시무라 함대의 뒤에 있었다 이들은 수리가오로 진입할때, 니시무라 함대와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했었지만, 니시무라 함대가 예상보다 빨리 진입한 턱에 니시무라 함대가 교전중일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4시 10분. 시마함대 전방에서 접근하는 군함이 한척 있었다. 바로 모가미였다.
이를 본 시마함대의 기함 나치는 모가미가 멈춰있는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모가미는 미속전진 중이었고, 이에 모가미는 결국 나치와 충돌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치는 함수가 대파됐고, 18노트 이상 속력을 내는것이 불가능해졌다. 니시무라 함대의 지휘관은 전함 후소, 야마시로 격침으로 모두 전사했고, 때문에 시마 키요히데 제독은 이들이 수리가오 해협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적 전력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시마 제독은 수리가오 해협으로 돌입하는걸 포기하고 니시무라 함대 생존자 구출 및 퇴각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잠시 후 단독으로 남하 중인 시구레 또한 발견, 이들에게 모가미를 지원하라고 명령했지만 시구레는 조타장치가 고장이 났기에 이 명령에 불복한다. 모가미를 포함해 함대를 재정비하던 시마함대는 7시 27분부터 여명이 밝아오면서 공습이 시작되었고, 이에 모가미는 피탄 당해 결국 항행불능에 빠진다. 이에 최종적으로 12시 30분 모가미는 뇌격처분을 받게되면서 니시무라 함대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군함은 시구레 뿐이었다. 니시무라가 어째서 시마함대와 합류하지 않고, 단독으로 수리가오 해협으로 돌입했는가에 대해서는 지휘관이 전사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추측은 가능하다. 니시무라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하기 전, 미 해군 함재기의 공격을 받았다. 니시무라의 함대는 미해군에게 노출이 되었고, 그들이 어디로 이동할건지도 사실 뻔했다. 후퇴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본 해군의 목적은 전멸을 각오하더라도, 구리타 함대가 사마르 앞바다로 나가, 미 상륙부대가 상륙하지 못하도록 하는거였고, 니시무라 함대는 구리타 함대가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적, 수상세력의 화력을 흡수하는거였다. 따라서 니시무라는 시마함대를 기다린다 하더라도, 이미 미 항모부대의 공습은 충분히 예상이 되었고, 이미 니시무라 함대는 시부얀에서 구리타 함대가 상당한 피해를 받았다는걸 보고받았다. 이에, 니시무라는 항공모함의 공습이 없는 야간에 일본군의 장기인 기습 공격을 하는게 가장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생각하는것 보다 7함대의 규모는 대규모였고, 레이더 사격술로 미 해군은 더 이상 야간전에서도 일본군에게 밀리지 않았다. 재밌는건 7함대를 이룬 전함 및 순양함의 대부분은 바로 진주만 공습으로 착저한 배들이었고, 니시무라 함대를 격퇴해버리면서 사실상에 진주만 복수극을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수리가오 해협 해전 이후 종전까지 전함과 전함간에 교전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인류 마지막 전함과 전함간의 함포 사격으로 기록되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전함과 전함간의 함포사격이라는 기록도 사실 미군이 만들어준 타이틀에 가깝다. 만약 38임무부대 제3군이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하기도 전에, 충분한 공습을 가했다면, 아마 니시무라 함대는 7함대를 만나기도 전에 전멸했거나 혹은 후퇴했을것이며, 니시무라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자마자 서둘러서 수리가오 해협으로 돌입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첫 공습 이후 더 이상에 공습은 받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홀시 제독이 휘하의 항모전단을 이끌고 북상했기 때문이다. 목표는 바로, 오자와가 이끄는 기동부대였다. 그리고 이 기동부대의 기함은 쇼카쿠급 항공모함 즈이카쿠, 진주만 공습 주모자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항공모함이었다.
![[레이테 만 해전 2부]-죽음의 협곡으로 행진, 수리가오 해협 해전//조종의 NAVY썰(해군 이야기)](https://ricktube.ru/thumbnail/nVpzwZp69mc/hq7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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