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黃玹)의 한시 촌거모춘(村居暮春)
Автор: 온고지신TV
Загружено: 25 ма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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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1855~1910)의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며 호는 매천(梅泉)이다. 사학자 황의돈(黃義敦)은 그의 7촌 재종질이다. 그는 전라도 광양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전라도 함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전라도 구례에서 성장했다. 1892년 봄 운현궁에서 화약이 터지고 여러 건물에 장치된 화약이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황현은 명성황후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 일가를 폭살하기 위해 벌였다.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통탄하며 조약 체결 16일 후 구례군 자택에서 음독 자살했다.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장지연(張志淵)이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에 실렸고, 이는 경남일보 필화 사건의 원인이 됐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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