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의 왈왈왈] 역술인과 당간부

국가기밀 누설죄로 기소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 서기가 국가기밀을 넘겨준 것은 외국의 정보기관이 아니라 유명 역술인이었다. 6월11일 톈진에서 열린 저우융캉 전 서기에 대한 재판 판결문에 나온 사실이다. 그는 왜 역술인에게 국가기밀 6건을 넘겨주었을까. 역술인은 넘겨받은 국가기밀을 어디다 썼을까. 국가기밀 문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판결문에는 해답이 없다. 다만 저우융캉과 같은 최고위 간부도 용하다는 역술인을 옆에다 두고 정책 결정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을 뿐이다.

화제의 역술인은 〈신장 3대 신선〉 〈기공(중국의 단전호흡) 대사〉로 꼽히는 차오융정(曹永正)이다. 그는 1959년 산둥성 칭다오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서북지방인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가서 어렵게 살았다. 그는 평범한 인상에다 약간 통통한 몸매로 영험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1980년대 기공 바람이 중국 대륙에 불었을 당시 유명세를 누렸다. 누구든 사진이나 명함만 보면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예측했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놓고 베이징과 시드니가 경합을 벌였을 당시 개최지 선정 1년을 앞두고 일찌감치 베이징 탈락을 예언해 관심을 끌었다. 한번은 홍콩 억만장자가 곧 심장에 문제가 생긴다고 예언했고, 억만장자가 이 말을 듣고 병원에 가서 실제로 심장병이 있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국영 방송인 CCTV에 PD로 입사한 아내를 따라 베이징에 입성한 그는 고위간부, 국영기업체 임원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전국구 인사로 부상했다. 그가 베이징 도심에 마련한 사합원(북쪽과 동서쪽에 건물을 배치한 베이징의 독특한 건축양식)에는 건강 상담과 미래 예언을 위해 밀려드는 고위 인사에다 그들을 만나려고 몰려든 기업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는 막강한 인맥관계를 이용해 석유 채굴권, 대형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영화세트장 건설, 농업을 비롯해 각종 이권사업에 손을 대면서 돈방석에 올랐다. 포브스 선정 중국 부자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저우융캉과 어떤 인연이었던가. 저우융캉은 쓰촨성 서기 시절 첫번째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28세 연하인 CCTV 기자(1970년생)과 재혼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우융캉의 둘째아들은 아버지가 재혼하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해 생모를 죽였다고 여기고 부친과의 관계를 아예 끊었다. 쓰촨성 인맥으로부터 이런 사연을 전해들은 차오융정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저우융캉 둘째아들을 위해 정신적, 물질적 편의를 제공했다. 저우융캉은 이런 사실을 알고 그의 배려에 고마워했다. 공안부장 시절 자주 베이징의 역술인 사무소를 들러 안마를 받고 정신적 위로를 받았다. 역술인 차오융정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600명이 넘는 부장급 성장급(장관급) 간부들을 고객으로 모셨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화무실입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인가. 2012년 말 저우융캉이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나고 무소불위의 중앙정법위 서기에서 퇴진하자 역술인 차오융정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3년 7월 당국 수사가 시작되면서 그의 기업체는 문을 닫았다. 그는 대만으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결국은 신병이 중국 당국으로 넘겨지면서 그의 모든 영화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은 미리 알지 못했던 것일까.

중국 공산당 정권은 점이나 풍수, 관상을 봉건적인 미신이라고 보고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저우융캉과 같은 최고위 간부도 역술인에게 의존하는 사례가 많은 게 현실이다. 부정부패 관리 옆에는 역술인이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이다. 왕린이라는 역술인도 한때 당간부, 유명 연예인과 기업인들과 가까웠다.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꼽히는 류즈쥔 전 철도부장(사형집행유예판결을 받고 교도소 복역중)은 현직에 있을 때 왕린이 정해주는 길일에만 뇌물을 받았다. 고위 간부들이 역술인을 옆에다 두는 걸 어떻게 봐야할까. 나쁜 짓을 해도 역술인의 도움만 받으면 불행을 피해갈 것이라는 요행심리 때문이 아닐까.

〈홍인표 전 중국전문기자·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