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시 고하도 - 일제 목화 수탈지
Автор: 독립운동 유적관
Загружено: 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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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내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고하도가 있다. 고하도에는 1936년에 일제가 세운 조선육지면발상지비가 있는데 이 비에는 일제의 면화 수탈 역사가 담겨있다.
1904년 목포 주재 일본영사 와카마쓰 도사부로는 미국산 육지면을 들여와 고하도에서 시험 재배에 성공한다. 육지면은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전통적인 면화(재래면)와 달리, 남미가 원산지이며 생산성이 높고 방적용으로 품질이 훨씬 뛰어난 품종. 이후 육지면은 전국으로 퍼져 가는데, 을사늑약 후 일제의 수탈 대상이 된다. 습한 일본의 기후에서는 육지면 재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통감부는 군복 등 군수물자 제조에 필요한 육지면 재배를 강요했지만 한국 농민들은 협조하지 않았다. 이에 일제는 헌병까지 동원하며 재배를 강요했고, 1930년대 들어서는 남면북양 정책(한반도 남쪽 농민에게는 면화 재배, 북쪽 농민에게는 면양 사육을 강요)을 실시하며 재배를 강권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이에 1936년 조선총독부는 육지면 생산량 증대를 기념하여 첫 재배지인 고하도에 조선육지면발상지비를 세웠다. 고하도가 육지면 첫 재배지이자 일제 면화 수탈의 출발지가 된 어두운 역사가 이 비에 담겨 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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