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짓누르는 정체불명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 ▌말씀으로 드리는 기도문
Автор: 영혼의 숨소리
Загружено: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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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짓누르는 정체불명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아뢰이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고통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상처라고 부르기엔 모호하고, 두려움이라고 말하기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실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내 영혼이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시편 42:5)
주님, 시편 기자도 이유를 다 알지 못한 채 이 질문을 던졌음을 봅니다. 그러나 그는 질문을 세상에 던지지 않고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설명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사람들은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십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시편 139:2)
말이 되기 전의 생각도, 감정이 되기 전의 무게도, 형태를 갖추기 전의 고통도 주님 앞에서는 이미 투명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통이 주님께는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오늘 제게 위로가 됩니다.
아버지, 저는 이 고통을 이해하려 애썼고, 분석하려 했고, 견디려 했고, 심지어 신앙으로 눌러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백합니다. 이 고통은 제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 3:5)
주님, 이해하려는 손에서 내려와 신뢰의 손으로 이 고통을 옮깁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이 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나를 부르시는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고통,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눌림, 이름 붙일 수 없는 무게가 나의 영혼을 오래도록 짓눌러 왔음을 주님은 아십니다.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아셨나이다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시편 139:1–2)
주님, 나는 그 고통을 이해하려 애썼고 원인을 분석하려 애썼으며 기도마저도 ‘해결책’으로 만들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침묵 앞에서 나는 주님을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을 구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나는 내가 해결자가 아니라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내가 구원자가 아님을 인정합니다. 내가 내 영혼의 주인이 아님을 시인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주님, 이 말씀 앞에서 나는 가만히 멈춥니다. 애쓰던 손을 내려놓고 붙들고 있던 논리를 내려놓고 버티던 내면의 근육을 풀어버립니다. 지금까지 나는 고통이 사라져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고백합니다. 고통 한가운데에도 주님은 계셨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주님, 이 고통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고통이 나를 하나님께 데려왔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제 고통을 밀어내지 않겠습니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고통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드립니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 그대로, 기도 같지 않은 기도 그대로, 믿음과 의심이 뒤섞인 상태 그대로 내 영혼을 내려놓습니다.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편 62:5)
주님, 이 잠잠함이 두렵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시간이 헛되게 느껴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님, 이 침묵이 곧 신뢰임을 믿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주님은 아시며, 울지 않아도 주님은 보고 계시며, 정리되지 않아도 주님은 이미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주님, 이 고통이 나의 약함이라면 이 약함 위에 주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옵소서.
이 고통이 나를 낮추는 자리라면 이 낮아진 자리에서 하늘의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 서. 나는 더 이상 ‘강해지려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버텨내려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이겨내려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붙들리기를 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주님, 지금 당장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지금 당장 감정이 회복되지 않아도, 지금 당장 해답이 주어지지 않아도 주님의 평강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하옵소서.
이 고통을 설명할 수 없어도 맡길 수는 있음을 믿습니다. 이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도 위탁할 수는 있음을 믿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주님,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내 인생의 소유권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이 고통의 해석권도, 이 고통의 처리권도, 모두 주님께 위임합니다.
이 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기도를 마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여전히 주님의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도 주님은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말 없는 신뢰로 이 시간을 봉헌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고통과 나 자신을 주님께 맡겨 드립니다.
하나님, 이 고통의 주인이 제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나는 여호와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애굽기 15:26)
나를 고치시는 분, 고통을 다루시는 분, 회복의 질서를 아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 제가 이 고통을 해결해 달라고 재촉하기보다 주님께서 이미 다루고 계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애굽기 14:14)
이 말씀 앞에서 제 영혼이 가만히 서게 하소서.
주님, 이 고통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 제목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가 아닌 것은 아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성령님, 이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제가 붙들고 있지 않겠습니다. 성령님의 중보에 맡깁니다. 제가 말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려 주십시오.
아버지, 이 고통이 저를 고립시켰지만 주님은 이 고통 속으로 들어오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이사야 43:2)
주님, 이 고통의 가장 깊은 곳에 주님의 임재가 먼저 도착해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고통이 끝나야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시작될 때 주님은 이미 함께하셨음을 오늘 밤 제 영혼이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고통의 의미를 지금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해도 맡길 수 있도록 말씀으로 저를 붙드소서.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한복음 13:7)
주님, ‘왜’라는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께’라는 방향만 붙들게 하소서. 이 고통을 제 손에서 내려놓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이미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을 살고 있으나 내 영혼은 이미 미래로 도망가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주님, 이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일을 끌어와 오늘의 짐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아직 주어지지 않은 시간의 무게를 미리 짊어지고 미리 무너지고 미리 낙심했습니다. 이 밤, 나는 그 짐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미래’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계획되지 않은 변수, 예측할 수 없는 사건,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주님, 이 말씀 앞에서 나의 계획을 주님의 뜻 아래 내려놓습니다. 성공할 계획도, 실패할까 두려운 가능성도 모두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나는 미래를 소유하려 했으나 주님만이 미래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요한계시록 22:13)
주님, 나의 내일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주님은 이미 그 끝에 서 계십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길을 주님은 이미 보고 계십니다. 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주님은 이미 품고 계십니다. 이 사실 하나로 오늘 밤을 버텨낼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이렇게 고백하게 하옵소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도 부족함이 없게 하실 분이 이미 나의 목자가 되셨음을 믿습니다. 주님, 혹 미래가 내가 기대한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 시간에도 주님의 임재는 사라지지 않음을 믿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이사야 43:2)
주님, 나는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지만 이미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붙듭니다. 미리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미리 무너지지 않게 하시며 그 날에 필요한 은혜를 그 날에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편 63:3)
주님,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도 미래가 불확실해 보여도 주님의 인자하심이 내 생명보다 나음을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두려움을 몰아내는 선언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나는 이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내일을 주님께 맡기고 오늘의 순종만 주십시오.”
/// 나머지 부분은 댓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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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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