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암 충남서산 대한불교조계종
Автор: 도암(挑唵) 배 정(柾)한
Загружено: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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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렀다. 고려 말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 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 무학 대사의 득도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사가 태어난 곳이 간월암에서 멀지 않은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이기 때문이다.
무학이 누구인가.
1392년 왕사로서 조선 개국에 참여 했고, 한양 천도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 공으로 인해 간월도와 인근의 황도를 하사 받아 절을 지었으니 그가 지은 절을 무학사(無學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학 대사는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뜰에 꽂으며,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어 자랄 것인데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나라가 쇠망할 것이요, 죽었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피면 국운이 돌아 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으니 암자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묘가 들어서 있었는데, 실제 귀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머물며 중창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회향 전에 김씨 가문에서 묘를 이장해 가는 가피가 답지하였고, 절터를 되찾은 다음 제법 모습을 갖춘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써서 내건 후 종종 찾아와서 한소식을 했었던 추억의 장소가 간월암인 것이다.
언젠가 만공스님이 끝없이 보채는 파도를 보다가 송(頌)을 한수 읊었다.무엇 보다 간월암이 유명해진 것은 1942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만공스님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했고 천일기도 회향 사흘 후 조국이 독립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지척에 살던 만해 한용운 스님이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써 세속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면 만공스님은 마곡사와 수덕사를 중심으로 선원에서 정진하며 웬만해서는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또한 선학원을 만들어 일제의 한국불교말살 정책과 총독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신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헌신 하였으니, 한국불교에 있어서 만공스님의 위치는 확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국의 독립 소식을 전해들은 만공스님은 무궁화 꽃에 먹물을 듬뿍 찍어 ‘세계일화(世界一花)’라고 쓰시고 대중 앞에서 말씀하시길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머지않아 이 조선(朝鮮)이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중심이 될 것이다.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저 미웠던 왜놈들까지도 부처로 보아야 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 법기(法器)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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