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병시절 3 - 가는 사람 그리고 오는 사람 2 (2사단, 노도부대, 32연대, 스키대대, 양구, 구암리, 군대이야기, 군복무담,)
Автор: 예비역병장(동그레)
Загружено: 19 мар. 2025 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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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병시절 3
가는 사람. 그리고 오는 사람 2
이렇게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편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역 또는 전출 등으로 공석이 된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소대에서 1981년 상반기에 분대장 세 명이 줄줄이 전역을 했고, 그 분대장들이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분대장이 부임했습니다.
내가 속한 총1분대에 박하사 뒤를 이어 장하사가 보직되었고, 총2분대에 문하사 후임으로 이OO하사, 포분대에는 강하사 후임으로 박OO하사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전역자들의 빈자리와 그동안 공석으로 있던 각 분대 탄약수들을 채우기 위해 1981년 3월부터 계속 신병들이 전입되어 왔습니다.
우리 동기들이 받은 첫 번 후임은 총1분대 제2총 손OO일병의 후임으로 1981년 3월 초에 전입 온 이아무개 이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병은 건강상 문제로 자대생활 1년여 만에 후송되었고 그 전에 경북 경산 출신의 김OO 이병이 들어왔고, 1982년 3월에 사수인 정병장이 전역하면서 또 다른 김OO 이병이 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1981년 3월 말에는 총2분대 제3총에 정O 이병과 포분대에 심OO 이병이 들어왔습니다.
이후에 손아무개와 명OO 이병이 들어와서 손이병은 총2부대 제4총으로 명 이병은 포분대 제1포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이 당시 포분대는 풀편제 상태였지만 국군의 날 행사를 앞두고 일부 병력이 신장 기준에 미치지 못해 전출 예정이었으므로 미리 병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국군의 날 행사 연습이 시작되었고, 행사부대로 편제가 바뀌면서 기존의 소대 개념이 사라지다 보니 신규병력의 전입은 없었습니다.
국군의 날 행사를 마친 후에 내가 속한 제1총의 사수 이상병이 보병분대장이 되어 하사를 달고 제3소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사수 최상병이 사수가 되고 내가 부사수가 되었는데 후임을 받지 못해 한동안 탄약수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내 후임으로 남아무개라는 신병을 받았는데 서울시립대를 다니다 입대한 그를 얼마 뒤 중대본부 행정병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또 다시 나는 후임병 없이 우리 제1총은 사수와 부사수 체제로 오랫동안 지내야했습니다.
이 같은 체제는 팀스피리트가 끝난 뒤인 1982년 4월에 태백 출신의 허OO 이병을 탄약수로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참으로 나는 군대 복도 없었지만 후임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여야 하는 기관총 팀에서 탄약수가 없는 상태로 국군의날 행사 이후 대대훈련과 대대ATT, 동계훈련 등 각종 훈련을 뛰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상병이 되어서 팀스피리트까지 사수와 부사수 체제로 내가 탄약수 역할까지 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1981년말 우리 소대는 분대장을 빼고 내 선임이 8명, 내 동기가 3명, 그리고 후임이 7명이 있었고, 1982년 3월 내가 상병을 달고 난 뒤에 3월 8일에 오병장과 이병장이, 그리고 3월 말에 정병장이 전역하는 바람에 나와 내 동기들은 일약 소대의 중고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 3월 10일.
병기과 파견을 마치고 자대에 복귀해 보니 새로운 신병 한 명이 와 있었습니다.
전북 임실이 고향이라는 이 신병은 그러나 신병교육대에서 이미 장기 지원을 해서 얼마 후면 하사관 교육을 받으러 갈 사람이었습니다.
행정적 절차를 위해 우선 자대 배치가 되었고 예비 중대인 우리 중대로 넘어오자 중대에서는 인원이 적은 화기소대로 배속시켜 있는 동안 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신병이 신병교육대에서 장기 지원을 하게 된 사연을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본래 그는 입대할 당시에는 장기지원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답니다.
사단 교육대에서 신병교육을 잘 받았는데, 퇴소를 며칠 앞두고 경계 실습 시간에 함께 근무를 서던 동료가 담배를 피웠고 그것이 마침 순찰 나왔던 선임하사에게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그 선임하사는 담배를 피운 그 병사는 물론 함께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 신병까지 팬티바람에 얼차려를 주었답니다.
이 때는 한겨울이었고 혹한의 날씨 속에서 갖가지 얼차려를 받으며 그의 온 몸이 얼어 붙어 극심한 동상에 걸린 것입니다.
실제로 그가 옷을 벗고 보여주는데 팔과 다리는 물론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해 있었습니다.
특히 두 무릎은 짓무르고 터져서 마치 담뱃불로 지져 놓은 것 같았습니다.
이 때 혹독한 기합을 받으면서 그는 중사라는 계급에 엄청난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오기가 되어 중사가 되기 위해 장기 지원을 신청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총2분대에 배속되었고 곧바로 팀스피리트 훈련에 우리와 함께 출정했습니다.
군대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또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때로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때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세월을 이루고 마침내는 전역의 문턱을 넘게 되겠지요.
덧붙이는 글
마지막에 소개한 장기복무를 지원한 전우와 얼마 전에 연락이 되어 통화를 나누며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그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왔기 때문에 신병인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1980년 11월 군번으로 나보다도 빨리 입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북 병력으로 그의 동기들이 우리 중대에도 몇명 있었습니다.
그는 훈련소에서 혹독한 기합을 받고 장기지원을 했는데 사단에서는 무슨 일인지 곧바로 하사관학교로 보내지 않고 1년 이상을 사단사령부에서 대기하도록 했다가 1982년 3월에 우리 중대로 전출 시킨 뒤 팀스피리트 훈련을 뛰고 그해 여름 쯤 하사관학교에 입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않나 생각 됩니다.
온 몸이 동상으로 짓무른 상태로 하사관학교에 보내면 과도한 얼차려 문제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사단 차원에서 장기간 대기 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소대에 왔을 때 그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미 장기지원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반 사병처럼 진급되지 않아서 상병을 달아야할 시기임에도 이등병 계급을 달고 우리 소대에 왔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신병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는 그 이후 하사관학교를 수료하고 일반 부대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빡센 특수부대로 배속되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다가 전역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특별히 그 부대를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부대로 보낸 것 또한 의문이 가는 점입니다.
혹시 오기로 장기 지원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성 배치는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역경의 시간을 보낸 전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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