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선비세상 선비촌 소수서원 | 선비의 도시 영주를 날다 | Landscape of korea | 드론촬영(Droneshot 4k) Welcome-fly
Автор: Welcome-Fly
Загружено: 6 окт. 2024 г.
Просмотров: 622 просмотра
#영주여행 #영주가볼만한곳 #영주명소 #영주관광 #영주볼거리 #영주일주일살아보기
아름다운 기억 Beautiful memories
무섬마을과 외나무다리
양반마을로 유명한 봉화 닭실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에 이웃한 양반마을이자 선비마을인 영주 무섬마을은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전통마을이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이다. 수도리는 이름 그대로 내성천이 마을의 3면을 감싸 안고 흐르고 있는데,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무섬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옛 선비들의 삶까지 엿볼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곳이다.
선비촌
선비촌은 유교문화 발생의 중심지로서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의 재현을 통하여 관광자원화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며, 우리 전통적 고유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선비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선비촌 영주는 예로부터 학문과 예(禮)를 숭상했던 선비문화의 중심지이며, 선비촌이 조성되어 있는 순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였던 회헌 안향 선생의 고향이다. 선비촌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비의 정신과 태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고자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일대에 건립되었다.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복원하였으며 그들의 정신을 담은 수신제가(修身薺家), 입신양명(立身 揚名), 거무구안(居無求安),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의 4가지 구역으로 조성되었다. 전체적으로 마을 공동체 형태로 구성하여 옛 영주 선비들의 생활 모습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각 가옥별로 거주했던 사람들의 신분에 맞는 가옥 규모에 여러 가구와 생활도구를 전시하였으며, 선비의 일생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직·간접체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선비세상
선비처럼 입고, 먹고, 배우고, 즐기며 21세기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선비세상은 한옥, 한복, 한식, 한글, 한지, 한음악 등 6개 테마를 기본으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터랙티브 콘텐츠와 첨단매체를 통해 한국 문화 속 선비정신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 K-문화 테마파크아다.(http://sunbeeworld.kr/)
소수서원
조선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워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이 서원은 수많은 명현거유 배출은 물론 학문탐구의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소수서원은 건립 당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불렸는데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하여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소수(紹修)'라 함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란 뜻으로 학문 부흥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명종임금은 손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 서원은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선생이 고려 말 유현(儒賢)인 회헌 안향(安珦 )선생께서 공부하시던 곳에 중종 37년(1542) 사묘(祠廟)를 세우기 시작하여 다음해에는 안향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학사(學舍)를 세워 주자(朱子)의 백록동서원을 본받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데서 비롯되었다. 중종 39년(1544)에는 안축(安軸)선생과 안보(安輔)선생을 배향하였으며, 명종원년(1546) 안향 선생의 후손 안현이 경상감사가 되어 서원의 사당을 참배하고 각종 경비를 지원하였다.
명종 3년(1548)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경상감사 심통원(沈通源)에게 서원의 편액과 토지·노비를 하사해 주도록 계청(啓請)하자, 감사 심통원이 조정에 계청함으로써 이듬해 명종5년(1550) 4월 왕명으로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이 서원의 이름을 『소수紹修』라 지었으니,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였음"(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之)이란 뜻이다. 명종임금이 손수 『紹修書院』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 하였으니, 곧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私立高等敎育機關)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인조 11년(1633)에는 서원을 창건한 주세붕 선생을 추향(追享)하였다. 회헌 안향(1243∼1306)선생은 고려 원종 원년(1260) 진사과에 급제한 후 우사의(右司議)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朱子學者)이다. 신재 주세붕(1495∼1554)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고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경내에는 강학당(보물 제1403호), 일신재 · 직방재, 학구재, 지락재, 장서각, 문성공묘(보물 제1402호)등이 있고,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등 중요유물과 각종 전적(典籍)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는 이곳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의 불적(佛蹟)이 남아 있다.
** 위 내용은 영주시청 관광관련 자료를 일부 또는 전부를 발췌 하였으머, 촬영에 협조하여 주신 영주시청 등에 감사드립니다.

Доступные форматы для скачивания:
Скачать видео mp4
-
Информация по загрузке: